등록 : 2014.06.18 18:10
수정 : 2014.06.19 18:17
|
사진 신화
|
안데르센, 미운 오리 새끼를 왜 '백조'로 만들었나?
- 다른 오리들은 커다란 아기오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유, 창피해. 저 못생긴 게 동생이라니." 미운 아기오리는 늪에서 헤엄을 치며 혼자 놀았습니다. -
덴마크 동화작가이자 소설가인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며 상상력을 심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빨래 일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 안데르센도 공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꿈을 꾸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자의식을 서른여덟 살에 쓴 이 동화에 그는 녹여냈을 것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의 결말은 잘 아시죠?!
|
사진 한겨레 김태형
|
- "얘, 어서 이리 와." 백조들이 너도 나도 부르며 다가오자 아기오리는 몹시 놀랐습니다. '아, 이젠 못생긴 나를 죽이려는구나.' 그 순간 아기오리는 물 위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니, 내 모습이 저기 있는 하얀 새들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이네!" 어느 새 아기오리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백조였다는 '출생의 비밀(^^)'을 알고서 힘차게 날갯짓하는 동화 속 주인공.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오리가 아닌 백조로서 그 뒤 삶은, 자기 장례식에 덴마크 국왕 부부가 참석할 만큼 말년의 행복을 누렸던 안데르센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해피엔딩~~
그런데 안데르센은 '하얀 백조'가 갖는 상징성을 이 동화에 문학적으로 적용했습니다. 검은 백조보다는 하얀 백조가 '미운 오리 새끼'와 대비되는 결말에 훨씬 더 어울리니까요. 무슨 얘기냐고요?
|
사진 신화 통신
|
18세기 유럽 사람은 백조는 모두 하얗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전해 내려온 지식체계뿐만 아니라 실제 자신들 눈으로 본 모든 백조가 흰색뿐이었으니까요. 충격은 신대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박물학자 존 레이섬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한 것입니다. 1790년의 일입니다. 유럽 사람들이 겪은 인식의 혼란이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1843년 11월에 <미운 오리 새끼>를 발표한 안데르센은 검은 백조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하얀 색이 갖는 상징성이 작품에 훨씬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후 '검은 백조(Black Swan)'라는 말은 경험에 의존하는 인식의 오류를 경계하라는 뜻을 가지게 됩니다.
'백조'는 일본이 만든 한자어입니다. '고니'라는 우리말을 써야 합니다. 말을 잘 골라야 하는 건, 단지 '검은 백조'라는 형용모순을 피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분이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총리 후보 지명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검은 고니'를 부정하는, 왜곡되고 편협한 자기 인식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장철규 기획위원 chang21@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