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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6 20:03 수정 : 2014.09.03 13:54

2011년 10월 서울시청 근처 재능교육 사옥 앞 환구단 처마 밑에서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오수영 사무국장이 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8월26일 치 [사진과 오늘 - 재능교육 노동조합의 앞날]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재능교육 노조투쟁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학습지 교사들이 가르치는 과목이 줄어들면 회사가 지급하는 수수료(임금)를 삭감하는 단체협약에 조합 지도부가 합의했다. 실적에 따른 수수료 차이가 크게 생기는 단협 조항에 반발한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새로 꾸려 재교섭을 요구했고, 회사는 단체협약 파기와 조합원 해고로 응답했다. 유명자 지부장과 오수영 사무국장 등 노조 지도부는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재능교육 사옥 앞, 조선시대 하늘에 제사지내던 제단인 환구단에서 '해고자 전원복직, 단체협상 원상회복'을 위한 천막농성을 이어갔다.

비닐을 두른 파라솔로 겨우 바람을 막는 형편인 거리농성이 기약 없이 이어지면서 조합 내부의 작은 차이들이 쌓여갔다. 2011년 조합 내부에서 조합원 폭력행위가 있었고 이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 및 해결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지도부 사이의 골이 깊어졌다. 2012년 7월 오수영 사무국장, 유득규 사무처장이 조합 임원을 사퇴해 환구단 농성천막은 한 여름에도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해가 바뀐 2013년 2월6일 오수영 전 사무국장은 여민희 조합원과 함께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라갔다. 종탑에 오르기 전 유명자 전 지부장 쪽과 함께 할 것을 제안했지만 입장 차이로 공동투쟁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후 재능교육 노조를 지칭하는 <종탑파>와 <환구단파>라는 이름이 생겼다.

2013년 2월 6일 재능교육 오수영 지부장 직무대행(오른쪽)과 여민희 조합원이 재능교육 본사를 마주보고 있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성당 종탑에서 원직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내걸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2013년 8월26일 종탑 농성자와 회사는 해고자 전원복직과 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 취하에 합의했다.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연말까지 새 단체협상을 체결하기로 하고 종탑을 내려왔다. 재능교육 노조가 천막농성을 시작한지 2076일째 날이었다. 고공농성 202일 만에 땅을 밟으며 오수영씨는 "앞으로 현장에서 부딪칠 일 생각에 한숨도 못 잤다"며 복잡한 속내를 토로했다.

유명자 전 지부장은 "합의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원상회복'이라 할 수 없고, 그 정도 수준의 합의안이었다면 몇 년 동안 이렇게 싸울 필요도 없었다"며, 실적에 따른 수수료 삭감을 명시한 2007년 5월 이전 단협으로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2077일째 농성을 이어갔다.

2014년 3월 재능교육 유명자 전 지부장이 서울시청 환구단 앞에서 파라솔에 비닐을 둘러 겨우 바람을 막은 길거리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회사와 맺기로 한 단체협약은 약속한 연말을 훌쩍 넘기면서 20차례의 교섭을 거쳐 올해 7월에 합의했다. 모두 85개 조항의 합의안은 재능교육 노조를 유일 교섭단체로 인정했다. 노조의 핵심요구 사항인 수수료 제도 폐지 문제는 2015년 상반기까지 해결하기로 미루어졌다. 유명자 전 지부장은 수수료 문제는 조합이 회사 입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지적한다.

재능교육 노조의 단체협상이 끝난 뒤인 8월20일 서울고법은 재능교육 교사 등이 낸 항소심 소송에서 "교사들은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하에서 임금,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마디로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판결대로라면 재능교육 노조가 회사와 맺은 2014년 단체협약은 물론 1999년 노동부로부터 받은 노조설립 필증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이번 판결은 재능, 대교, 웅진 등 학습지 교사뿐만 아니라 레미콘 기사, 골프장 캐디, 보험 설계사 등 200여만명의 '특수고용 비정규직노동자(특고)' 전체와 직접 연관된 사안이다. 재능교육 노조가 수수료 문제를 둘러싼 종탑파나 환구단파가 아니라, 특고의 노동자 지위 인정을 위한 <특고파>의 선봉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장철규 기획위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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