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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소설 <아프라테르>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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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소설 <1화>
이것은 크리링 이야기다. 세탁소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조금 고지식한 사람이다. 내가 말하려는 크리링은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의 등장인물이다.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작년에 《원피스》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니까. 총 2억 3,000만 부가 팔렸고, 한국에서만 2,000만 부가 발행됐다. 연재된 것은 1984년부터 1995년까지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팔리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드래곤볼》을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 그 만화의 주인공은 손오공이고,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크리링에 관한 것이니까.
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웹툰 관리자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이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만화를 아주 싫어한다. 입사할 때 지원한 곳은 기획과 관련된 부서였고, 3년 차까지는 배너광고와 관련된 일을 했다.
-저번 기획안 보니까, 만화에 대해 잘 알던데.
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인사이동시켰다. 내가 적임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즈음 우리 회사는 경쟁이 심해져가는 웹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다. 웹에 게시하는 만화는 종이책과 뭔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전 사원이 의무적으로 기획안을 제출했다. 대부분 생각하는 것이 비슷했다. 배경음악을 넣거나 동영상을 덧붙이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추가비용이 너무 많이 발생해서 현실성이 없었다. 웹툰은 스마트폰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화가 적고 그림이 단순해야 한다. 그리고 책처럼 한 자리에 앉아서 쭉 보는 게 아니라 잠깐씩 회차별로 보니까 전체의 연속성보다는 회당 완결성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완전 컬러여야 한다. 종이책과 달리 웹에 게시할 경우 만화를 완전 컬러로 만들어도 비용 초과는 거의 없다.
내 기획안은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제대로 된 기획안도 아니었고, 누구나 다 알 만한 것들이었다. 내 것과 내용이 비슷한 기획안도 많았다. 다만 나는 컬러판으로 나왔을 경우 더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만화를 다수 언급했다. 스스로 만화를 많이 봤다는 것을 광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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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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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문학과사회〉신인상에 단편소설〈편협의 완성〉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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