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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0 09:59 수정 : 2014.06.03 10:08

이갑수 소설 <2화>



나는 어릴 때 엄청난 양의 만화를 봤다. 형 때문이었다. 형은 만화 대여점 누나를 좋아했다. 형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만화 대여점에 처음 간 것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형이 중학교 1학년 때였으니 정확히 1999년 봄이었다.

대여점 이름도 기억난다. 유미책방. 대여점 사장의 딸 이름이 유미였다. 형의 첫사랑이다.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남자들은 어릴 때는 누나를 좋아하고 나이가 들면 연하를 선호한다. 결국 남자는 자기가 몇 살인 것과 관계없이 늘 20대 초중반의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뭔가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도 유미 누나는 예쁜 편이었다. 책방에 오는 손님 중 90퍼센트는 남자였고, 사장이 직접 가게를 보는 시간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누나가 사장과 부녀 관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장과 누나는 성씨가 달랐다. 어쨌든 누나는 사장을 아빠라고 불렀다.

형은 학교가 끝나면 책방으로 달려갔다. 중학교보다 초등학교가 먼저 끝났기 때문에 나는 먼저 가서 형을 기다렸다. 한 권에 200원, 대여 기간은 1박 2일, 다섯 권을 빌리면 한 권은 공짜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열두 권을 빌렸다.

대여점 한쪽에 3인용 소파가 있었다. 파스텔 블루 톤의 인조가죽으로 된 아주 낡은 소파였다. 묘하게 편안했다. 나와 형은 거기 앉아서 빌린 책을 다 읽고 바로 반납했다.

-엄마한테 혼나요.

누나가 집에 가서 편하게 읽으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렇게 대꾸했다. 반쯤은 사실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만화책을 보는 것을 싫어했다.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왜 만화를 보면 안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었지만, 설득력은 별로 없었다. 만화를 교과서의 반대말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체로 어른들은 만화를 우습고 저급한 것으로 생각한다. 만화가 공식적으로 예술의 한 종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로 저급한 만화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가치 있는 것은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퍼센트는 쓰레기다. 어쩌면 사람도 그런 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화를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형의 몫이었다. 요즘 웹툰에서 사용하는 분류를 따르면, 형이 고르는 것은 액션, 무협, 판타지, 스포츠, 학원물이었다. 《북두신권》, 《시티헌터》, 《더 파이팅》, 《열혈강호》, 《타이의 대모험》, 《드래곤볼》 등속이다.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일본 만화다. 형의 취향은 일본 만화와 잘 맞았다. 당시 인기 있는 소년 만화의 대부분이 일본 만화였던 탓도 있었다.

-일본 놈들은 좆나 대단한 것 같아.

형은 자주 그런 말을 했다. 어느 면에서 비교해도 한국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만화가의 자질 문제는 아니다. 요즘 나는 만화가들을 자주 만나는 편인데, 그들 개개인은 결코 일본의 만화가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차이는 시스템이다. 일본은 만화 하나를 만들면, 동시에 관련 게임을 출시하고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판다. 인기가 주춤하면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개봉하기도 한다. 그들은 만화를 현실가치로 환원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만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합당한 비용을 지불한다. 일본은 아직 종이책이 팔리는 나라라 웹툰이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이 시장도 언제 뺏길지 모른다. 지금도 블로그를 통한 일본 만화 번역물이 웹툰보다 조회 수가 높다. 물론 형은 그딴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만화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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