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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7 10:04 수정 : 2014.06.03 10:02

이갑수 소설 <7화>



형은 경찰에서 보관 중인 누나의 오토바이를 가져왔다. 검사의 공소장에는 훔쳤다고 적혀 있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이다. 형은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서 의경 둘과 형사 한 명을 설득하고 오토바이를 꺼냈으니까.

형은 오토바이를 가지고 카센터로 갔다. 오토바이는 아주 단순한 구조물이다. 발차기와 주먹질만으로도 해체할 수 있다. 형은 오토바이의 잔해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카센터에는 인화성 물질이 아주 많았다. 바닥에도 유막이 덮여 있었다. 화재보다는 폭발에 가까웠다. 반경 15미터 안에 있는 건물의 유리창이 전부 깨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책방 사장과 신부님이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판사는 형에게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물었고,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궁금하다. 브레이크 고장에 대한 복수였을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터뜨린 걸까? 더 단순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단지 누나한테 잘 보이는 큰 향불을 피운 걸 수도 있다. 판사는 내게 왜 형을 말리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나는 형을 설득할 힘이 없어서 지켜만 봤다고 대답했다.

웹툰 관리를 하다 보면 싫어도 만화를 보게 된다. 굳이 읽으려고 하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하나 있다. 《3등급 슈퍼 영웅》이라는 웹툰이다. 미국의 SF 소설을 만화로 만든 것인데, 아주 유치하다. 그래서 좋다. 세상이 유치하기 때문이다. 착한 편 카드와 나쁜 편 카드 중에서 한 장을 고르는 슈퍼 영웅의 세계와 다를 게 없다.

형은 나쁜 편 카드를 선택했고, 판사는 1년 8개월 형을 선고했다. 감옥을 누나 식으로 말하면 아포리아쯤 될까?

형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유미책방은 문을 닫았다. 사장이 지방의 소도시에서 당구장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만화를 보지 않았다. 형도 마찬가지다. 면회 갈 때 만화책을 사간 적이 있는데, 필요 없다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다. 아주 평온한 시간이었다.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 가끔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형이 조금 더 오래 감옥에 있기를 원했다.

지루한 만화의 연재가 중단되듯 형은 수감 기간을 3개월 남기고 가석방됐다. 형은 체중이 많이 늘었고, 말수가 적어졌다. 어딘가 음울해 보였다. 출소 후 몇 달 동안 형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주로 존슨과 같이 돌아다녔다. 클럽에서 형을 봤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성매매 업소에도 다니는 눈치였다. 한번은 형이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학과 동기를 소개해줬다가 동기한테 따귀를 맞았다.

가석방 기간이 끝나고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형은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간혹 존슨만 만나는 것 같았다. 돈이 떨어진 게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뭔가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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