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소설 <8화>
형은 차츰 활기를 되찾아갔다. 특별히 운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체중도 조금씩 줄어들어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형이 방 안에서 온종일 뭘 하는지 궁금했다. 많이는 아니고 아주 약간의 호기심이었다. 정말이다. 나는 예비열쇠로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형은 컴퓨터 앞에 서 있었다. 헤드폰을 낀 탓에 내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형이 보고 있는 것은 AV 영상이었다. 화면 속의 여자는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카메라는 여자의 얼굴과 가슴, 유두, 음부의 털을 차례로 클로즈업했다. 잠시 후에 남자가 등장했다. 남자는 능숙하게 여자를 애무했다. 형은 허공에 대고 남자의 손동작을 따라 했다. 너무 진지하고 리얼해서, 형 앞에 진짜 여자가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여자가 애무를 하려고 하자 형은 마우스를 조작해서 뒷부분으로 건너뛰었다. 이제 여자와 남자는 섹스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절정에 다다른 표정이었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아.
여자의 교성이 헤드폰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인지, 형이 내는 것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형은 컴퓨터 앞에 있는 A4 용지를 허리 밑으로 가져갔다. 나는 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불을 켰다. 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일본 놈들은 좆나 대단한 것 같아.
형이 A4 용지를 구겨 휴지통에 넣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들은 형이 일본어를 공부하게 만들었다. 형은 히라가나로 AV 배우의 이름을 쓸 수 있었고, 영상에 나오는 대화를 대부분 알아들었다.
만화가들은 하지 못한 일이다.
한번 들킨 이후로 형은 거침없었다. 방문도 잠그지 않았고, 부모님이 없을 때는 헤드폰을 끼지 않고 AV를 봤다. 같이 보자고 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자위는 혼자서 했다.
나는 형이 하루에 몇 번이나 자위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엿본 것은 아니다. 간단한 계산으로 알 수 있었다. 형은 일주일에 한 번씩 쓰레기통을 비웠다. 쓰레기봉투 안에는 구겨진 A4 용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A4 용지 한 장의 무게는 5그램이다. 정액이 묻은 용지는 15그램 정도 된다. 나는 전자저울로 쓰레기봉투의 무게를 쟀다. 1,100그램이었다. 그러니까 형은 하루에 대략 아홉 번에서 열 번의 자위를 하는 셈이었다.
-내 이상형은 이 안에 있는 것 같아.
형은 외장 하드를 꺼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3테라바이트짜리 외장 하드 안에는 AV 영상이 가득 들어 있었다. 형은 영상과 배우별로 점수를 매겨서 폴더를 분류했다. 의외로 기준이 높아서 10점 만점을 받은 것은 열 편도 안 됐다. AV에는 두 종류가 있다. 유모/노모.
-노모가 진리지.
형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형이 10점 만점을 준 것은 모두 모자이크가 없는 영상이었다. 형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전에서 진리라는 단어를 찾아본 적이 있다.
아레테이아, 은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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