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소설 | 아프라테르] 9회

이갑수 소설 <9화>

형은 감옥에서 보낸 시간과 비슷한 기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외장 하드는 다섯 개로 늘어났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식 날 형은 대학 등록금이 한 학기에 얼마인지 물었다. 나는 400만 원쯤 한다고 대답했다. 형은 아버지를 설득해서 3,000만 원을 받았다. 등록금 대신이라고 했다.

형은 AV 배우가 되겠다며 일본으로 갔다. 존슨이 형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는 존슨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그는 형한테 완전히 설득당했다. 한편으로는 안심도 됐다. 존슨은 미국인이니 외국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없었다면 내가 따라가야 했을지도 모르니까.

일본에 간 형은 몇 달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일본 AV 산업에는 야쿠자가 관련되어 있다는데, 형이 야쿠자를 설득하려다가 도쿄 만에 가라앉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형을 신경 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회사에 들어간 게 그즈음이었다. 연수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환영회, 회식, 워크숍, 선배, 상사. 형이 오십 명쯤 생긴 것 같았다.

간신히 적응해서 한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있을 때쯤 형한테서 이메일이 왔다. 제목은 ‘친애하는 동생에게’였다. 나는 형이 어떤 형태로든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친애하는 동생에게, 라니. 일본 놈들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었다.

형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메일을 보냈다. 형식적으로 나와 부모님의 안부를 묻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자신의 일본 생활에 관한 거였다.

형은 AV 기획사에 들어갔다. 정식으로 배우가 된 것은 아니었다. 촬영 준비를 돕고, 배우들 심부름을 했다. 말하자면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에 거치는 연습생 기간이었다. 월급은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숙식은 해결되는 것 같았다.

존슨은 데뷔를 했고, 형은 하지 못했다. AV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정력이다. 40분에서 한 시간까지 사정하지 않고 버틸 수 있어야 촬영을 할 수 있다. 형은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다음은 외모다. 아주 못생겨야 한다. 실제로 AV에 출연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추남이다. 평균 이하의 남자들도 아름다운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줘야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기는 하다. 여성 관객층을 위한 배려인데, 극히 드물지만 아주 잘생긴 남자 배우도 있다. 형은 애매하게 잘생겨서 문제였다. 반면 존슨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흑인이라는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동양 남자들은 흑인에게 이상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형은 존슨과 사이가 멀어졌다.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이메일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AV 배우가 되는 것은 무공고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둘 다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형은 못생겨지기 위해 눈썹을 반쯤 밀고, 콧수염을 길렀다. 이메일에 사진이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그런 얼굴이라면 형이 무슨 말을 해도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모 문제를 해결한 형은 정력증진을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돼지비계로 성기를 문질러 발기시킨 후에 얼음 팩으로 진정시키는 방식이었다. 사정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열두 번째 편지가 왔을 때는 20분까지 버틸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