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7 18:08
수정 : 2006.07.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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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정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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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어느 날 딸아이가 물었다. “자위가 뭐야? 오이로 한다고 하던데.” “누가 그래?” “우리 반 남자애들이. 여자들이 오이로 한다고, 나 해봤냐고 묻던데.” 자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기도 전에 ‘오이로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딸에게, 나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몰라 순간 심호흡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즐겁지? 그런데 혼자서도 자신을 즐겁게 할 수 있거든. 여자가 오이로 한다는 것은 남자애들이 즐기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 수 있어. 여자들끼리 이야기해봐.” “여자애들은 그런 이야기 안 해. 남자애들이 하면 듣고만 있어.” 아이가 더 묻지 않아 나도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다녀온 딸은 다시 질문했다. “애들이 그러는데, 나 자위 못하게 하려고 엄마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래. 여자가 자위 좋아하면 걸레라며?” 나의 설명을 자위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14세 친구들은 어떻게 자위를 배운 것일까? 성기 중심 이상의 자위를 설명하려던 나의 의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고, 결국 나는 자위하지 말라는 보수적인 엄마가 되었다.
최근 나는 아이가 기술·가정 시험공부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은 ‘음경 한 개, 음낭 한 개, 난소 두 개, 난관 두 개’ 등 생식기의 개수를 맥락도 없이 암기하고 있었다. 추상적인 설명으로 이루어진 시험범위 여섯 쪽을 위해서 암기를 하던 딸은 나에게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수업시간에는 절대로 질문할 수 없는, 성관계에서부터 피임 등에 이르기까지 친구들끼리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성은 육체적 행위뿐만 아니라 인격적 만남,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금성출판 교과서 28쪽)는 의미를 학교에서 어떻게 설명했기에 이토록 알고 싶은 것이 많을까? 특히 ‘아버지가 되는 사정’과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월경’이라는 생식 위주의 설명을 통해 아이들은 성적 즐거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교과서는 성적 즐거움의 책임을 위해 피임을 설명하기보다는 단순 정보로서, 주로 여성에게 설명하는 듯하며 몽정이라는 것은 남성의 성적 성숙으로 다루고 있는 듯했다. 여성의 몽정-꿈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성적 실천-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없었다. 당연히 딸은 여자는 몽정을 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교과서가 몽정 대신 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처녀막/처녀성’이었다. ‘얇은 점막인 처녀막은 대다수의 경우 처음 성관계를 가질 때 파열되지만 다른 원인에 의해 파열될 수도 있다’는 설명에, 아이는 처녀막이 찢어질 수 있으니 여자들은 성관계나 자위를 해서는 안 되냐고 물었다. 또 ‘이것으로 처녀성을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친절한(!) 부가설명은 과연 ‘처녀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묻게 했다. 그러니 ‘총각성’도 있냐는 질문은 당연했다.
결국 내가 그날 아이의 시험공부를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개의 성교육이었다. 교과서에서 대놓고 다루진 않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전달하려는 것-10대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바람직한 이성교제를 해야 하며 특히 여성들은 처녀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을 설명했고, 동시에 나는 다양한 예를 통해 그것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 후 가정시험 100점을 맞았다는 이야기에 덧붙인 아이의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 반 변태(오이로 자위하냐고 물었던 ‘성 박사’)는 열두 개나 틀렸어. 그 애가 하는 얘긴 이제 안 들을 거야. 성에 대한 것은 어디에서 제대로 가르쳐주는 거야?” 대체 10대 친구들은 성적 즐거움을 제대로(?)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변혜정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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