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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관/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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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부모가 위암에 걸려서 항암 치료를 받는다면 그 자녀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힘든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족들은 절대로 암에 걸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부모가 걸린 암에 나도 걸리지 않을까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단체로 암 검진을 하는 일도 있다. 그런데 암 발생에서 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찰스 다윈도 유전병에 결핵을 넣기도 했지만,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의사였던 허친슨은 결핵·나병·괴혈병·구루병이 유전한다고 강의했다. 훗날, 결핵과 나병은 세균성이고, 괴혈병과 구루병은 비타민 시(C)와 비타민 디(D) 결핍 탓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핵 같은 전염병이 가족 사이에 많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영양 결핍도 비슷한 식생활을 하는 가족 안에 많은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질병들은 유전과는 무관하다.
암에서도 한 가족에 특정암이 많다고 해서 유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간암은 비(B)형 바이러스가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바이러스가 가족 사이에 전염되기 때문에 비(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있는 가족은 간암 발생률이 다른 가족보다 높지만, 이것 역시 유전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또한 위암의 원인은 현재 짠 음식과 헬리코박터가 주범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가족들은 공통된 식사를 하고 식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특정 가족에 위암 발생률이 높다고 해도 그것은 유전이라기보다 생활 습관에 따른 것이다.
스웨덴의 역학자 리히텐슈타인은 암 발생에서 유전이 차지하는 비중과 생활 습관을 비롯한 환경적 요인의 비중을 알고자 북유럽 세 나라 약 4만5천쌍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 사이 암 발생 연관성을 비교하여 계산한 결과 순수하게 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위암이 28%, 대장암이 35%, 유방암이 27%, 전립선암이 42%였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는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하는 일란성 쌍둥이 한 명이 대장암에 걸리면 다른 쌍둥이도 곧 대장암에 걸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주 달랐다. 75살까지 다른 한 명이 대장암에 걸릴 확률은 11%에 불과했고, 이란성일 때는 5%에 불과했다. 유방암은 일란성일 경우 13%였고, 이란성일 경우 9%였다. 물론 이 연구 결과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똑같은 것은 아니고, 그 인구집단의 흡연율이라든지, 식습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지만 대체적으로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 연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인가? 유전으로 말미암아 우리 운명이 결정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태어난 집안이 노예 집안이라서 노예로 평생 살아야 한다든지, 타고나길 암에 걸릴 운명이라고 한다면 절망적인 기분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연구 결과는 암 발생에서 유전은 적은 비중을 차지할 뿐이고 생활 습관과 환경의 영향이 주된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곧 우리는 암에 걸릴지 말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담배를 끊고, 짜게 먹지 않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고, 술을 하루 두 잔 이내로 줄이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정기 검진을 받는 것이다.
너무 뻔한 소리만 한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뻔한 소리 하기 싫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널리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서홍관/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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