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20 17:19
수정 : 2006.12.2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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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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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이라는 숫자를 경제학자들도 사용하기는 하는데, 이것이 생각처럼 다루기 쉬운 숫자는 아니다. 국내 생산인지 국민 생산인지를 살피는 것은 기본이지만, 시계열 비교를 위해서는 물가 조정의 기준이 되는 환산연도와 환율 정보도 맞춰봐야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온다. 어쩔 수 없어서 사용하는 지표이기는 하지만, 달러 기준으로 된 국민소득이 생활인 개개인의 실질적 경제사정을 드러내주는 지수는 아니다. 어지간하면 제대로 된 후생지수나 구매력지수 같은 것을 사용하고 싶은데, 불행히도 이런 지표는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국민소득을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를 경제학자들보다는 공무원이, 그리고 그보다는 정치인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3년 전부터는 자칭 청와대의 좌파들이 국민소득이라는 단어를 아주 자주 애용하는 것 같다. ‘2만달러 경제’가 참여정부의 국정 기조의 맨 앞에 나오면서부터이다. 정상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서는 국민소득을 국가운영의 목표로 삼은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 첫 번째였던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조지표 정도로 사용하는데, 이게 국가의 지고지순한 목표가 된 셈이다.
대통령은 ‘2만달러 경제’라는 말을 들으면서 “드디어 뭔가 잡히는 것 같아서 눈이 번쩍 뜨였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머리가 띵해지는 것 같았다. 정상 성장률보다 약 1% 가량 높이는 고성장 전략을 잡은 셈인데, 정확히 표현하면 ‘불균형 성장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만을 탓하기는 어려운 것이, 요즘은 우파든 좌파든 기업가든 평범한 직장인이든 입만 열면 “다음에는 3만달러 시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국 사람들은 국민경제를 무슨 월드컵 축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엘리트 체육에선 대표선수가 금메달 따면 온 국민이 좋아하지만, 경제는 대표선수가 잘 해봐야 구경하던 국민들도 같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하여간 뭐 그렇다 치자. 월드컵 4강, 야구 4강의 신화에 불타오르는 뜨거운 애국심을 가진 열혈 국민들의 힘과 정열이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어쨌든 대단한 것이 3년 뒤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되었던 그 꿈의 ‘2만달러 경제’가 바로 내년에 온다고 한단다. 눈이 번쩍 뜨였다던 대통령으로서는 더 이상 여한이 없도록 성공한 대통령인 셈이고, 그의 정치적 성공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은데, 지지율이 생각만큼 나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섭섭하고 서운하겠다.
지금 식량안보를 이유로 새만금 간척을 하면서 그 옆에 있는 서산간척지에는 108홀짜리 골프장을 짓겠다고 하고 있다. 북으로 갔던 소떼가 있던 그 농장이 레저형 기업도시를 한다며 골프장으로 바뀐다. 아파트 반값을 외치던 ‘왕 회장’이 이 꼴 안 보는 게 다행이다. 한편 아파트 가진 사람들은 버블이 폭발할까봐, 그리고 다른 국민들은 폭발 안 할까봐 제발 버블 좀 터지라고 고사 지내고 있고, 국민의 절반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될까봐, 또 다른 절반은 안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이 와중에도 비정규직 수는 차마 세어보기가 겁나는데,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는 전력을 다하여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주여, 저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소서!
꿈의 2만달러, 드디어 내년에 펼쳐지는데 그 꿈은 도대체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매는지 …. 속요나 한 구절 읊어보자. “꿈의 2만달러 시대, 미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서 우노메라, 아으 동동다리”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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