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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12 17:25 수정 : 2007.03.12 17:25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야!한국사회

우리 사회는 죽은 자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사회다. 김선일씨 사건은 대표적인 경우가 아니었던가 싶다. 취업이 목적이었든 선교가 목적이었든 간에 외교부의 권고를 어기고 이라크로 들어갔다가 무장단체로부터 살해당한 김씨의 처사는 자신과 가족은 물론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 정부가 져야 했던 외교적 부담으로 보더라도 분명 현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이유로 동정 여론에 힘입어 그를 국립묘지에 안장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으며, 부산시는 장례식에 무려 1억5천만원을 사용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죽음이 아닌 바에야 부산 시민의 세금으로 장례식을 치를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언론에서는 그런 문제는 외면하고 장례식 장면만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국민 전체의 슬픔을 자아내는 데 급급했다.

유명인들의 자살 사건에서도 같은 일은 반복된다. 2004년에는 업체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있던 안상영 부산시장이 구치소에서 자살을 선택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에게 인사 청탁 대가로 수천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던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비리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남지사도 역시 자살을 선택했다.

이분들에게 물론 억울한 사연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법정에서 진실을 가려야 마땅한 일이었는데 이들은 자신이 유죄가 입증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안 시장의 경우에도 유죄가 되었다면 수감되는 것은 물론이고, 연금 혜택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모든 것이 무죄에 입각해서 처리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장례식은 시장(市葬)으로 치러졌다. 죽음은 때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나라당은 안 시장의 죽음을 ‘권력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했고 ‘현 정권이 안 시장을 회유해 이를 거부하다 자살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 가족들조차 한나라당의 주장이 ‘소설에 불과하다’고 부인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피해자로 미화시켰다. 곧이어 치러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여유 있게 승리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죽음의 미화에 언론사들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 누가 되었건 이들이 죽음을 선택한 뒤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억울하다고 말했다’느니, ‘오죽했으면 자살했겠느냐’는 식의 동정론에 입각하여 보도하기 때문에 원래 사건의 본질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연예인 자살도 예외는 아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다른 연예인들에게 한마디씩 조문 소감을 묻고 한결같이 “고통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라”는 보도를 통해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모든 어려움을 벗어 버리는 행복한 선택인 것처럼 미화시킨다.

성인들은 그러한 보도에 영향을 덜 받겠지만 청소년들은 이러한 암시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칫 인생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힘든 고비를 만날 때마다 어렵고 먼 길을 택하기보다 손쉬운 죽음을 택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더 성숙해야 한다.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처벌과 비난까지도 감수하고 반성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만약 부당한 혐의와 비난을 받고 있다면 그에 맞서서 싸우는 용기 또한 필요로 한다.

언론에서는 사회적 명사든 연예인이든 죽은 자라고 해서 모든 책임을 면해주고 미화하는 일은 이제 삼갔으면 한다. 자살이 자신에 대한 모든 비난과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가장 손쉬운 길처럼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자살이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던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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