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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09 17:16 수정 : 2007.04.09 17:58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었단다. 그런데 경제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좀 의아한 것이 있다. 언론을 통해 듣기로는, 제조업 쪽 자동차와 섬유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냈는데 제약 분야와 문화 분야에서 손실이 났단다.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아직 우리나라는 제조업에 목숨 걸고 있는 나라인 모양이다. 자동차와 섬유 분야의 이득이야 왜 나쁘겠는가마는 그것을 위해 과연 문화 분야에서 그처럼 양보해도 되는 것일까 싶다. 스크린쿼터를 더 이상 늘릴 수 없게 되었고, 저작권 역시 국제기준보다 훨씬 긴 사후 70년을 인정하고, 방송 분야의 상당한 개방 같은 양보가 그리 쉽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 정부는 확실히 문화상품보다는 자동차나 섬유 같은 제조업 상품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의구심이 생긴다.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우리는 ‘고부가가치 산업’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제는 경공업, 중공업 등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버텨오던 저부가가치 산업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 말이다.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지적 생산품들이 우리 산업의 발전을 좌우할 것이라고 계속 주장해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신지식인’이니 ‘지식기반사회’니 하는 구호를 국정홍보처 광고를 통해 계속 내보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번 자유무역협정에서 보듯이, 막상 구체적인 정책을 펼 때면 문화 분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뒤로 밀린다. 돈과 시간만 있으면 생산품이 척척 나와주는 제조업에 비해, 지식기반산업은 돈과 사람을 투여한다고 생산물이 제 시간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문화산업의 특유의 불확실함 때문일 수 있다. 게다가 낮은 질의 제조업 상품은 낮은 가격으로 팔면 되지만, 낮은 질의 문화상품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늘 확실히 계량화된 결과가 빨리빨리 나오기를 기대하는 우리사회에서 잘 수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영화 조금 망하더라도 자동차 파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펴려면, 이렇게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식생산의 불확실성을 껴안고 발전방향을 찾아가는 전향적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개방을 해서 경쟁력을 키우라고? 아무리 좋은 질의 작품을 만들어도 거대자본이 장악한 유통망을 뚫기는 힘들 것이라는, 문화의 경쟁력 향상은 적정 수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앞장서 온 사람들이 이미 입이 닳도록 한 이야기를 더 반복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과연 우리의 지식기반산업이 여태껏 개방을 하지 않아서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던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그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식기반사회’니 ‘고부가가치 산업’이니 하는 말들은 구호였던 모양이다. 하긴 이 구호가 한창이던 무렵, 국정홍보처에서 내보낸 황당한 광고문구가 생각난다. “우리는 지식기반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영어와 인터넷을 잘 하는 국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아니, 영어와 인터넷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준단 말인가? 영어와 인터넷은 지식 유통의 통로일 뿐이다. 우리의 지적 생산품이 없는 상태에서 능란한 영어와 인터넷 실력이란, 외국의 지식을 계속 빠르게 사들이는 통로가 될 뿐이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문화의 시대를 부르짖었던 그때조차 이런 광고문구가 버젓이 나온 것을 생각하니, 확실히 ‘지식기반사회’란 그저 구호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은 이 사실을 더욱 확실히 보여준 것뿐이다.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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