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9 19:17
수정 : 2008.01.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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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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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중구난방’(衆口難防)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는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십팔사략>의 고사에 의하면, ‘중구난방’은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경우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라는 위정자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오늘날 ‘중구난방’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포와 대중을 불신하는 지배자의 시선은 아닌지 다시 새겨볼 일이다. ‘대중의 복수’라고 평가되는 2007년 대선을 ‘중구난방’ 하는 ‘대중의 발견’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해보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대중의 목소리는(衆口)는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우나(難方), 또한 그 말길과 자유로운 생각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難防).
누구보다도 ‘대중’을 적극적으로 사고했던 혁명가 그람시는, 상식의 뿌리로부터 희망을 정치화하는 것이 진보의 출발점임을 말한다. “상식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지만, 또한 상식에 기초를 두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대중의 상식의 뿌리로부터 솟구쳐서, 상식의 껍질을 깨고, 그것을 다시 상식화하는 것.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정치라고 한다. 낡은 ‘전위’의 언어를 버리고, 현실을 외면하는 ‘방언’도 버리자. 내용의 급진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급진성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의 그릇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대중의 언어로, 대중과 함께, 대중을 향해 생산하는 것이 진보의 희망이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성적표를 두고 진보의 몰락이 이야기된다. 나도 대선 후보를 선출한 민노당의 정치적 무감각이 의아했고, 그것이 정파 구조의 예정된 결론임을 알게 되면서 깊이 절망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방언’에 맥이 빠졌고, 대중의 상식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낡은 언어들에 머뭇거렸다. 분명히 대중은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2004년 흔쾌히 표를 던졌으나, 2007년 지지를 철회한 많은 대중들은 ‘민노당은 더 추락해야 돼!’라고 말하며 냉정한 선택을 했고, 표를 던진 3%의 대부분도 ‘이건 아니지만’ 결단을 한 것이었다.
민노당에게는 지금이 고통의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지지를 철회한 많은 대중들이 그저 냉소하며 떠나버린 것만은 아니다. 아직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뜨거운 선언과 ‘삼겹살 불판 갈자’는 유쾌한 결기를,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일궈 온 평당원들과 10명의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빛나는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
정치적으로 무감각하고, 다소는 냉소적인 내가 요즘처럼 민노당에 관한 기사를 열심히 찾아 읽은 적이 없다. 불난 집을 바라보는 호사가의 취미가 아니다. 그 시끌벅적한 ‘중구난방’의 현장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분당이어도 좋고, 제2의 창당이어도 좋다. 진정한 혁신이어도 좋다. 단 대중을 향해서 논쟁하고, 대중과 문제를 깊이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내부의 언어로 낮게 속닥이는 것은 위기를 은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것을 두고 ‘진보의 기품’을 훼손하였다고 삿대질하지 말고, 대중에게 더 많이 곪은 상처를 드러내길 바란다. 대중과 떠들썩하게 ‘중구난방’하며, 대중의 언어로 ‘새로운 대중’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진보의 정치다.
‘단절의 꿈이 역사를 밀어간다’는 한 시인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정치 일정을 빌미로 낮은 봉합의 수순을 밟는다면, 희망이 없음을, 3%마저 냉정히 돌아설 수 있음을 함께 전한다. 희망과 함께.
정정훈/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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