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16 20:00
수정 : 2008.01.1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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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이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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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뿐 아니라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임을 강조하는 낸시 폴브레는 “나라 사이 경제 경쟁력을 비교하는 데 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만 의존하는 것은 너그럽게 봐 준다고 해도 유치하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무엇을 경제적 가치로 볼 것인가, 경제복지 지표에는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해 국내총생산을 대치 또는 보완할 수 있는 지수 개발을 고민했다. 1995년 유엔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결정된 남녀평등지수(GDI)와 여성권한지수(GEM)는 이런 오랜 고민의 결과다. 이 두 지수는 경제발전이 성별화된 사회·문화적 환경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반영한다. 남녀평등지수는 교육 수준과 평균수명, 그리고 예상소득을 기준으로 삼는 반면, 여성권한지수는 국회와 입법기관 여성 비율, 고위임직원 및 행정관리직 여성 비율, 전문기술직 여성 비율, 남녀 소득비를 살핀다. 여성가족부가 한국 사회에서 왜 아직은 독립기구로 남아야 하는가를 말하면서 논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통계의 하나가 바로 이 여성권한지수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통계에서, 2007년 한국의 남녀평등지수는 157국 중 26위라는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더 높아질 수 있는 점수를 깎아먹은 것은 남녀 사이에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예상소득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권한지수는 93국 중 64위에 머문다. 한국의 남녀평등지수가 그 정도 수준인데 여성권한지수가 ‘조금’ 낮기로서니 그 무슨 대수냐고, 그건 다 높은 자리 차지하고 싶어 안달 난 여자들의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여성권한지수가 가리키는 것은 한 사회에서, 국가기구에서 여성이 확보하고 있는 의사결정권의 폭이다. 이것은 노동현장에서의 동참 방식을 묻는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목표나 비전, 변혁 이념을 함께 구성할 수 있는 힘의 공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곧 어떤 상태를 평등하다고 하는지,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무엇이 경제적 가치인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민주적 구조가 마련돼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권한지수는 단순히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이 얼마나 동등하게 의사결정권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여성권한’은 여성뿐 아니라 ‘성인지적 감수성’에 입각해 사회구성원 모두 동등한 참여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문화·사회·경제적 편견에 의해서도 제한되지 않은 채, 의제를 정하고 그 의제를 실현하는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권한, 이것이 바로 젠더 권한, 즉 성인지적 감수성에 기반을 둔 권한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가족부가 왜 다문화 시대, 전지구적 이동의 시대에 한국사회가 꿈꾸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비전의 적극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한 인식과 소통능력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국민들’이, 그 다름을 인정하며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삶의 공동체를 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여성가족부의 목표와 비전이 아니던가.
보육과 여성보호도 결국 복지정책의 범주에 든다는 인식 아래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를 합치는 것은 여성가족부가 해내야 하는,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바로 이 역할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면 국민성공 신화는 무성할지 몰라도 국민행복 이야기는 말라버릴 것이다.
김영옥/이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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