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30 19:52
수정 : 2008.01.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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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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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이명박 정부가 국가인권위를 ‘접수’하려 한다. 소속 없는 국가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을 보장한 국가인권위는 이전 정부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기회를 이용해 가져오는 것, 대통령 직속기구로의 개편이 ‘인수’가 아니라 ‘접수’인 이유다. 국가인권위의 위상 문제는 대통령직의 원활한 인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항이다. 이 문제는 대통령직 인수 차원에서 논의될 성질이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자 헌법 해석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꿔버린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지만, 헌법 해석까지도 화장실 드나들 듯 해서는 고약한 향기가 진동한다. 2001년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김대중 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독립적인 국가인권위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소속 의원 전원의 발의로 법안을 제출했다. 소속 없는 국가기구로서의 독립성 보장과 헌법상 권력분립 위반 여부는 당시에도 논란이 된 쟁점이었다. 그러나 고전적 삼권분립의 논리가 아니라 기능적 권력 통제의 관점에서 위상을 정립하고 헌법을 해석해야 한다는 합의가 존재했다. 한나라당의 당론은 이러한 논쟁에 분명하게 마침표를 찍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인수위는 정반대로 변화된 헌법 해석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국회와 법원에 권고하는 국가인권위의 기능에 비추어 대통령 소속에 두는 것이 오히려 헌법상 권력분립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법학 교수들의 지적에 대하여는 묵묵부답이다. 인권기구는 독립성이 생명이라는 유엔의 경고와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비판도 철저히 외면한다. 그리고 고장난 라디오처럼 철 지난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헌법에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고, 직속기구가 되더라도 업무상의 독립성은 보장될 것이라고. 동어반복의 전략으로 버티고 굳힌다. 민주주의의 전제인 토론과 대화는 실종되고, 독단이 일방적으로 선언된다. 권력을 잡고, 헌법 해석까지 독점한 무표정의 오만이 무섭다.
‘귀 막은 민주주의’, 변사 없는 무성영화를 보는 듯 답답했다. 한나라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1월21일, 한나라당은 의원 전원 명의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부대변인이 변사 노릇을 자처하는 논평을 발표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무현 정권 시절 지나치게 권력층의 코드에 맞춰” “정권의 시녀노릇”을 해왔기 때문에 인권위에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해줘서 정말 고맙지만, 스스로를 베는 칼을 빼어 든 셈이다.
한나라당과 인수위는 법률에 “대통령 소속으로”라는 단 몇 글자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인권위가 새로운 코드에 맞추도록 “대대적으로 수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급소와 맥을 정확히 짚어, 그 부분을 ‘수술’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권기구는 독립성이 생명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었다. 만약 독립된 인권기구가 ‘정권의 시녀’였다면, 대통령에 소속된 국가인권위는 정권의 어떤 노릇을 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의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가인권위는 권력과 엇박자를 내야 한다. 정부가 시장의 효율을 바라본다면, 국가인권위는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정책과 법률을 인권의 관점에서 점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의제에서 회피되기 쉬운 차이의 문제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작은 희망이다. 그러니 제발 인권을 인질로 잡아 권력에 줄 세우려는 일방적인 질주를 멈춰라. 거기에 우리 사회의 낭떠러지가 있다.
정정훈/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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