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1 19:36
수정 : 2008.02.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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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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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연예오락 방송과는 담쌓고 사는 편이지만, 유재석과 다섯 사내가 출연하는 리얼리티쇼 ‘무한도전’에 관해선 대충 알고 있다. 외식 차 들른 음식점 티브이, 무심코 고른 채널, 웹 브라우저 위로 시선을 낚는 연예가 소식까지 이들의 동정이 속속 접수되어서다. 애청자 아닌 이가 알 정도니 파급력도 지대할 것이다.
지난 설 연휴 무한도전은 특전사 체험을 내보냈다. 소위 병영체험의 레퍼토리란 안 봐도 술술 외울 수 있다. 사뭇 진지한 문어체 어투와 다부진 몸매, 로봇처럼 일사불란한 장병들. 이에 맞서 도무지 각이 나오지 않는 어설픈 오합지졸 출연진의 극적 대조! 결국 한쪽은 놀림감이 된다. 무한도전팀의 몸값 나가는 출연진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관 명령에 ‘앉아 일어서!’를 반복했고, ‘예 아니오’로만 답했으며, 마침내 ‘앞으로 취침’ 굴욕마저 감수했다. 망가진 출연진들 위로 폭소가 겹친다.(이게 정녕 웃긴단 말인가?)
‘체험 삶의 현장’의 설 특집도 신병교육대 체험이라는 유사한 편성이다. 진흙 범벅이 된 참가 여가수는 ‘국군 장병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낀다’며 닳고 닳은 소감을 남겼다. 예전에 비해 군대를 소재로 한 방송은 현저히 준 듯하다. 군대 문화를 희화해 안방에 입성시킨 성공적 효시는 ‘우정의 무대’일 터인데, 매주 대동소이한 편성으로 장수를 누린 걸 보면 징병제도가 붙잡고 있는 고정 시청자의 규모와 그들의 심정을 익히 짐작할 만하다. 평시 대한민국에서 군에 자식 보낸 부모는 전시의 긴급 상황과 같다. 그 때문에 그 방송의 피날레였던 어머니 상봉은 그렇게도 인기였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 신파조의 결말부가 참을 수 없이 부담스러웠다. 군과 민이 혼연일체가 되는 이런 방송의 역겨움은 대본이 깎아세운 과장된 남성상의 부각만이 아니다. 시사적으로 꽤 예민한 대상으로부터 편파적인 일면만을 집요하게 부풀리고 희화하는 게 불만인 게다. 미디어는 군에 관해 한입으로 두 말을 해 왔다. 논픽션 시사교양 프로는 양성평등 시대 잔존한 군 문화의 가부장성을 성토하고, 무방비 상태의 군 의문사나 병영 사고로 군이 못미더워 제 자식 군대 못 보내겠다는 부모의 불안을 다룬다. 반면 픽션 연예오락 프로는 장병의 군살 없는 몸매의 남성미와 눈물범벅이 된 어미에게 거수 경례를 올리는 장한 아들에게 앵글을 맞춘다. 또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군 경험이 전무한) 여성 출연진의 주장을 보탠다.
70~80년대 병영 국가의 혐의를 벗는가 싶더니만 이제는 미디어가 자진해서 실전 체험을 선도한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고정 소비계층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해병대나 특전사의 병영체험은 일선 학교와 기업체가 ‘교육 프로그램’으로 당당히 선망하는 실정이다. 가족단위 입소체험 프로그램도 있다고 들었다. 부자가 나란히 구호에 맞춰 우로 굴러 좌로 굴러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으악!)
극성맞게 채 자라지도 못한 애들에게 체형에 맞지 않는 전투복을 입혀 유격훈련이며 공수 기초훈련 따위를 받게 하는 이유가 뭘까? 대략 사나흘 군사교육을 마치고 군악대와 의장대를 앞에 두고 대대장이 쥐어주는 수료증을 받은 자식들이 한층 성숙해질 거라 믿는 걸까? 훈련복 차림 앳된 입영자들의 부동자세 기념 사진이 그런 신념을 준단 말인가? 분단국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전투복 착용은 국가가 지정한 의무기간 안에서 애용하자. ‘밀리터리 룩’ 애호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유별난 극기 훈련이 아니어도, 사회는 이미 충분히 검증된 야비한 극기 훈련소 아닌가? 더욱이 사회와 군이 요구하는 극기의 질은 사뭇 다른데 ….
반이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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