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7 19:35
수정 : 2008.03.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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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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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미셸 푸코’라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촘스키’라는 이름이 있다. 20세기가 기억하는 성스러운 이름들이다. 한국에는 ‘김현’이라는 이름이 있고, ‘정운영’이라는 이름이 있고, ‘진중권’이라는 이름이 있고, ‘박노자’라는 이름이 있다. 역시 성스러운 이름들이다.
이 사람들을 분류하는 방식은 ‘인문사회과학’이다. 지금 한국에서 이 단어의 의미는 도통 안 팔리는 책이라는 뜻이다. 슬프지만, 외국의 저자는 한국에서 팔리는 사람들이고, 한국 저자는 안 팔리는 사람들이다. 푸코와 촘스키, 혹은 에코, 이름만으로도 필승이지만, 진중권·박노자가 아무리 한국의 문제에 ‘필통’한 사람들이라도, 이 이름은 안 팔리는 저자라는 뜻이다. ‘마시멜로’류와 비교하면, 동그라미가 몇 개 다르다.
그래도 이 이름들은 한국에서 현재 초일류급들이다. 여기에 한국 인문사회과학 일류에 넣을 수 있는 이름으로 강준만, 고종석 등의 이름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급 떨어지지만, 몇 명의 이름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가 다다. 이 사람들이 촘스키보다 한 끗발 떨어진다는 것에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어쨌든 푸코나 촘스키보다 이 사람들이 좀 뭔가 모자란다는 것은, 슬프지만 현실이겠다.
그러나 나는 돈밖에 계산할 줄 모르는 경제학자다. 슬프지만 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도서관이 외국의 서적과 자료는 열 배나 비싼 돈을 주고 기꺼이 사면서, 진중권이나 박노자의 책은 그냥 기증해 달라고 출판사에 요구하거나 할인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원래 도서관에 들어가는 책이나 논문, 혹은 다큐멘터리 같은 것들은 대략 열 배 비싼 게 공정 가격이다. 책을 여러 사람이 돌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런 책에 추가 비용을 내는 건 당연하다. 그 정도에서 선진국들이 균형을 만들었는데, 한국의 도서관에서는 외국에는 당연히 그 비용을 치르면서도 한국 책에는 오히려 제값보다 깎거나 툭하면 그냥 달라고 한다. 진중권이나 박노자의 책은, 외국에 가면 훨씬 비싼 가격으로 도서관에 들어가는데도, 한국 도서관에서는 국내 저자라서 깎으려 들고, 그게 아니면 아예 안 사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푸코나 촘스키에 비하면 한 급 떨어지는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의 분석마저 10분의 1 가격으로 깎일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이 사람들은 한국 사회 분석에서 전세계 최고의 저자들이다. 비용? 도서관 기준으로, 외국의 100분의 1 가격으로 취급 받는다. 이 정도 막 취급 받을 하류 저자들은 아니다.
그래도 박노자나 진중권은 좀 낫다. 많은 사회과학 책들의 판매 수준은 100권 미만이다. 초판은 1000권을 찍지만 실제로 팔리는 것은 그 정도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모든 연구자들이 박노자나 진중권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사주면 좀 나은데, 이런 책들은 외국에서는 10배 비싸게 사주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공짜’로 납품하거나, 싫으면 말라고 도서관들이 엄청 주인 노릇을 한다. 상상해 보자. 촘스키가 한국에서 저자였다면 …. 그가 써서 유명해졌던 ‘생성문법’ 책을 도대체 누가 사주겠는가? 그 딱딱한 내용을!
제발 이러지 좀 말자. 우리의 인문사회 저자들, 그들을 우리가 말려 죽이는 중이다. 도서관용 양서는 10배 정도 더 주고 사는 게 국제 상식이다. 박노자, 진중권 같은 사람들 책은 도서관이 돈 좀 더 주고 사는 게 정말 국제 상식이다. 그것만 해줘도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이 일단 숨이라도 붙일 것 같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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