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30 20:43
수정 : 2008.04.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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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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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나라마다 독특한 카니발 축제가 있다. 모든 카니발은 민중들의 쾌락과 욕망에 공식적인 통로를 제공하고 그 적나라한 폭발을 조건 없이 인정한다. 내가 오랫동안 거주했던 독일의 카니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그야말로 달려들어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였다. 사실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실제로 넥타이가 잘리는 ‘처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넥타이를 자른다는 명목 하에 목 가까이 접근하는 가위 날의 섬뜩함과 낄낄대는 웃음은 블랙 유머로서 가히 명품감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 평등한 문화에 대한 욕망을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집단적 욕망으로 간주한 통찰도 돋보이고 게다가 거세공포를 정신분석의 난해한 이론체계에서 빼내어 깔깔거리며 유희적으로 실연하니 그것도 유쾌하다.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카니발 축제가 있다. 해마다 4월이면 열리는 이 축제의 이름은 서울여성영화제.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이 축제의 표어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이 표어에 환호성으로 답한다. 12년 전 이 축제가 처음으로 여성들을 동숭아트 광장으로 불러 모았을 때 맛보았던 그 집단적 해방의 전율. 그처럼 짜릿하고 그처럼 깊었던 통쾌함은 모든 ‘첫 경험’이 그러하듯 이후로 여성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의 공통된 반복서사였다. 그러나 서울여성영화제는 여성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롭게 고안해 낸 카니발인 만큼 해마다 축제에 힘을 심어 줄 의제 개발에도 진력해왔다. 소통의 장, 공공의 장, 여성의 장으로서 지난 12년 동안 여성영화제를 함께 한 김은실, 김소영 집행위원은 특히 ‘여성의 장’으로서의 여성영화제를 강조한다.
여성영화제는 그동안 대안적 이미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쾌락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 지구적 차원을 모두 아우르며 성 평등한 문화확장을 위한 토론과 연대의 장을 마련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올해 ‘여성장’의 뜨거운 의제 중 하나가 ‘몸’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트랜스젠더와 양성구유, 성 전환 수술, 호르몬 치료, 성형수술 등 상이한 ‘몸 변형’ 장면들은 신자유주의와 지구화라는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몸의 정치학을 논하는 포럼의 언설들과 만나면서 지금 우리의 실존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몸의 인식론적 지도를 어떻게 그려야할 지에 대한 논쟁의 장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이라는 상품화 회로 속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성 남성의 몸은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주체의 자기 돌봄과 맞물리고, 이것은 생체 테크놀로지와 의학 제국주의, 그리고 국가 간이나 국가 내부의 계급문제와 연결된다. 즉 빈곤한 나라에 사는 빈곤한 여성의 난자가 지구적으로 밀매되는 현상이나 뛰어난 성형수술 의사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는 전 세계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자기배려나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이 당대 여성주의 논쟁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라고 할 때 이번 여성영화제가 가져다 준 중요한 성과는 논쟁의 초점을 ‘자발적’ 참여자들의 자아 상태를 묻는 심리학에서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몸산업·생체 산업의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옮기자는 제안일 것이다. 물론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이러한 인식론적 통찰은 과연 어떤 실천적 결단과 탈주선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축제는 막을 내렸지만 질문은 열린 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영화제라는 독특한 축제의 진정한 의미다.
김영옥/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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