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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5 21:15 수정 : 2008.05.05 21:15

반이정 미술평론가

야!한국사회

“만약 참아낼 수 있는 불행이라면 우리는 스스로를 동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를 넘어 버리면, 이 참을 수 없음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농담과 웃음이라는 것이다.” 국가 동원령으로 전쟁에 끌려가 팔다리를 잃은 유년의 벗을 방문하자 친구는 전장에서 나도는 지어낸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머리 위로 수류탄이 터져 수천조각이 난 참전용사가 150번의 수술 끝에 엉덩이는 겨드랑이에, 생식기는 항문에 붙은 채 멀쩡히 살아간다는 터무니없는 유머였다. 그래도 둘은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한다.

앞의 독백은, 이 꾸며낸 상이용사 재활기를 듣고 극중 주인공이 내뱉는 자조로서,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 만화 <페르세폴리스>에 나온다. 개인이 감당 못할 구조적 부조리를 극복할 특단의 조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페르세폴리스>는 근본주의 정치로 퇴행한 1980∼90년대 이란을 배경으로 한다. 부패한 정권이 쏟아낸 종교 신비주의와 애국주의에 몰입되어 나라 전체가 반미치광이 상태가 되자, 그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려는 이란의 소수 지식인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뜯어보면 이들의 저항 방법이란 게 고작 국가가 금지시킨 파티와 음주를 비밀리에 즐기거나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반론을 토해내거나, 궁극엔 나라를 등져 저항 대상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다수 동포조차 폭압 정치에 중독돼 정치적 불신을 품고서도 마음 깊이 퇴행적 전통주의를 키우고 있어 연대 가능성 자체가 희박한 탓이다.

기초적 의식주 문제와 의사 표현의 자유가 상당 부분 보장된 오늘의 대한민국을, 순교자가 넘쳐난 그 무렵의 이란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엄살일 테다. 그렇지만 절망감의 깊이에선 사뭇 유사하다. 무리 중에 왠지 저 혼자 상황 파악이 안 될 때 우리는 이따금 ‘정말로 몰라서 물어 본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이 겸손한 질문법은 때론 돌아가는 사태는 대충 알겠는데 그게 허약한 논리와 명백한 거짓말일 때 과연 구성원 모두 이에 동의하는지를 확인·비판할 목적에서 되묻는 반어법으로 쓰인다.

대한민국에서 맨정신을 유지한 채 살려면 ‘정말 몰라서 물어볼 질문’이 헤아릴 수 없어야 정상일 게다. 지난달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의 허무한 결과 발표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전후로 벌어진 일련의 소동 앞에선 더더욱. 먼저, 특검 조준웅 검사의 수사 발표. 법 적용의 형평성이 만화 속 한 장면마냥 유린된 이 부조리극은 이건희씨가 신이 점지한 대한민국의 실 군주임을 발표한 것이다. 법 질서가 집행자에 의해 교란된다면 개인이 실정법을 준수해 가며 까다롭게 세상사를 살아야 할 이유가 대체 뭘까? 특검수사팀을 별도로 혼내줄 시스템이 부재하니, 비밀 민병대라도 조직해야 하는 걸까? 이름도 성스러운 정의의 전달자들로 짓자! 또 부모 유산으로 고가의 명작을 매입해 상속세를 탈루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되면 삼성 특검의 전례를 제시하면 재밌지 않겠나? 이게 내가 정말 몰라서 묻는 첫째 질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검역 불안으로 반대 여론이 70%에 달하고, 엠비 지지율도 급기야 포복을 시작했고, 한 고등학생이 발의한 이 대통령 탄핵 인터넷 서명은 이미 100만을 초과해 기록을 깼단다. 최소한 대선 총선 때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지지한 유권자 중 상당수가 등 돌렸단 얘긴데, 대운하 재앙, 쇠고기 수입, 강부자 내각, 이는 진작에 예견된 일 아닌가? ‘그들’을 밀어준 순간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 걸 진짜 몰랐을까? 이게 내가 정말 몰라서 묻는 둘째 질문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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