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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8 15:44 수정 : 2008.10.20 16:46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야!한국사회

최근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10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녀들이 먼저 움직였다. 이 사안은 복잡한 사건이다. 개인적으로 10대와 20대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몇 해 되는데, 그렇게 해서 모였던 약간의 지식들이 졸저 <88만원 세대>를 쓸 때 도움이 됐다. 관찰 결과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10대는 20대와는 전혀 다른 흐름을 가지고 있었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또 달랐다. 이 차이는 미묘하지만 해류의 방향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도도해 보였다.

졸저를 쓰면서 지금의 20대, 곧 ‘외환위기 이후 10년’에 사회에 진출하게 된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을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꽤나 고심을 했다. 반면 지금의 10대는 그럴 고민이 전혀 필요가 없었던 것이, 그들은 자신들을 ‘막장 세대’라고 이미 부르고 있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사회적으로 유명해진 개념으로 자신들의 구조 진단은 물론, 그래서 자신들은 막장에 서 있는 인생들이라고 얘기했던 집단들이 지금의 고 2∼3들이다. 정확한 인문학적 지식과 사회과학 용어는 몰라도 스스로 자신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만약 지금의 10대가 ‘막장 세대’라면, 그 정도의 자각도 집단적으로 하지 않던 20대는 ‘끝장 세대’ 정도 될 것인데, ‘88만원 세대’라는 책 제목과 경합을 했던 제목이 바로 이 ‘끝장 세대’였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제목을 달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파, 조금 중립적인 제목을 달게 됐다.

올해 연초에 신년사는 <레디앙>이라는 인터넷 매체에 했는데, 그 대상이 ‘한국의 좌파 소녀들’이었다. 이미 2년 전부터 한국의 소녀들은 전체 세대, 계층 혹은 직업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형성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소녀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남성 중심주의의 편견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이런 것을 처음 관찰한 것은 2년 전의 일이고, 작년에는 이미 하나의 흐름처럼 뿌리에서 형성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들은 어른들과 많이 달랐고, 특히 20대와는 분석변수에서 정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의 10대 소녀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피동적 대상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선동을 당해 움직이는 그런 존재는 결코 아니다. 10대 소녀와 20대 대학생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버마스가 지적한 개념으로 ‘소통’, 그리고 최근 경제학에서 유행하는 ‘신뢰’라는 개념과 같이 20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겐 ‘냉소주의’가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며, 자신의 옆에 있는 또다른 친구들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한국의 20대에게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 현상이다. 어떻게 보면, 유럽에서 얘기하는 ‘합리적 존재’ 혹은 ‘시민적 주체’에 가장 가깝게 처음으로 등장한 집단이 바로 지금 한국의 10대들일 것이다. 이들은 대화하고, 고민하며, 그 속에서 시민적 신뢰를 만들어낸다. 좀 멋있게 표현하면, 이들의 지식은 느리더라도 ‘집단 진화’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협동 진화’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촛불문화제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한국의 10대 소녀들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2008년 한국, 이들이 바로 희망이다! 이들의 꿈이 구현되면 한국에도 구원이 올 것이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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