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2 19:36
수정 : 2008.06.02 19:36
|
박수정 르포작가
|
야!한국사회
5월2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가 끝날 무렵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상치 못한 이 움직임에 경찰들은 당황하며 막아섰다. 사람들은 들었던 펼침막을 경찰들 머리 위로 가볍게 넘겼다. 그리고 경찰 옆, 한 사람 빠져나갈 공간으로 유유히 걸었다. 흐르는 물처럼. 다시 뭉친 사람들 뒤로 광장에 앉아 있던 이들이 일어나 함께했다. 경찰이 몇 겹으로 길을 막아서면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았다. 어느 새 모두 걸었다. 그 대열에 생머리에 다부지게 생긴 한 여자가 아이들 손을 잡고 걸었다. 그이는 천 일 넘게 공장 앞과 길거리에서 ‘정규직화 쟁취, 노조탄압 중단, 위장도급 철회’를 외쳤고 지금도 외치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다.
이틀 뒤, 그이는 구로역 광장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탑에 올랐다. 기륭전자 노동자 네 명이 서울 시청앞 광장에 설치된 16미터 조명탑에 오른 지 보름 만에 다시 그이가 35미터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 사이 회사와 두 차례 교섭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해고 위협 없이 우리 일터에서 일하게 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는 천 일 내내 그랬던 것처럼 쉽게 무시당했다.
다음날, 중국을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수행 경제인에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도 끼어 있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뿌리째 뽑아놓고,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옮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싹 없애버린 기업주와 국민 생존권을 뒤흔들어 놓은 대통령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자의 외침을 외면한 기업이고 정부인데 국민들의 외침이라고 귀기울여들을 리가 있을까. 국민이 켜든 촛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길 줄도 새겨 보려고도 않는 대통령이나, 노동자가 왜 저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하는지 새겨 보지도 새길 줄도 모르는 기업가나 그저 닮았다. 중국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촛불시위가 잠잠해져 있을 거라고, 노동자가 제풀에 꺾여 아래로 내려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촛불행진은 멈추지 않았고, 고공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절박함이 있듯이 그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비정규직 인생을, 참혹한 이 사회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있다. 얼굴 모르는 수만의 사람들이 함께 외치고 어깨 겯고 밤을 새우며 길을 뚫고 새벽을 맞이하면서 몸은 힘들어도 가슴이 뻐근해지는 저 길에 그이도 함께 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절박함도 함께 나누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이는 탑 위에서 햇볕 따갑고, 비 쏟아지고, 천둥치고, 황사바람 부는 날들을 아흐레째 보낸다. “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란다고 동료가 전한다. 지난 24일,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너른 길을 걸었던 그이는 이제 저 높고 좁은 곳에서 밤마다 촛불을 켠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간부가 함께 올라 탑 맨 꼭대기에서 함께 불을 밝힌다. 아래서 보면 꼭 무슨 등대불빛 같다. 오랫동안 곳곳에서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를 두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지만 해결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저 불빛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고 기륭 노동자들은 말한다. 수만 개의 촛불도 마찬가지리라. 구로역 광장에서 노동자들 이야기를 듣다가 지갑에 딱 한 장 든 만원을 내놓는 나이든 아저씨와 새벽 세 시 너머 김밥이 든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고 광화문 길을 바삐 걸어가며 김밥 좀 드시겠어요, 하는 젊은이에게서 사람의 연대를 엿본다. 그리고 두 개의 촛불과 수만 개 촛불의 연대를 나는 감히 꿈꾸어본다.
박수정 르포작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