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6 20:43
수정 : 2008.06.1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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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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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초고층 건물 옥상에서 가파른 부감으로 내려다본 도심 사진이 며칠 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찔한 스펙터클이다. 중독성마저 갖췄는지 개인 컴퓨터 바탕화면에 여러 각도로 촬영된 관련 이미지 파일을 깔아놨을 지경이다. 손쉽게 보려고.
주최 쪽 추산 10만 인파가 건물 사이와 도로 위에 운집했다니 장관이다. 군중은 오직 단일 목적으로 도로를 점거했다. 혹 근자에 일몰 후 광화문 일대로 서울시민의 일과처럼 눌어붙은 ‘그것’을 연상했다면 미안! 2003년 2월 고도 175m의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립은행 건물 표면에 달라붙은 왜소한 체구의 프랑스 사내 이야기다. 운집한 10만 인파란 벽에 밀착해 건물을 타고 오르는 바로 그를 구경 온 시민들이다.
‘인간 거미’라는 별칭까지 얻은 알랭 로베르는 국제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마천루만 골라 정복해 왔다. 안전장구 하나 없이 맨손으로. 그의 등반 목록에는 파리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에펠탑 같은 역사적 유적부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시어스 타워처럼 1970년대 기네스북 선두를 다퉜던 고전적 초고층 마천루, 그리고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한 아그바르 타워 등이 포함된다. 아그바르 타워는 건물 표면이 죄 유리창으로 뒤덮인 원통형 구조라 창틀을 조심스레 밟아가며 정상까지 올랐다니 심장에서 경외감이 일렁인다.
한편, 2004년 성탄절을 기해 현재 세계 최고도를 자랑하는 대만 ‘타이베이 101’(첨탑까지 무려 509.2m)을 무려 4시간에 걸쳐 기어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런 그에게도 실족 기억은 있다. 15m의 비교적 안전한(!) 높이에서 떨어진 덕에 목숨만은 건졌지만 당시 후유증으로 현기증 증세가 나타났으며, 현재까지 인체 기능 6할이 장애 판정을 받은 상태다. 만성 현기증 환자가 사오백 미터 건물에 맨손으로 달라붙은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것도 수시로. 건물 표면에 살짝 팬 홈에 발끝을 고정한 채 두 팔을 허공에 올려 촬영에 응한 보도사진 앞에 보는 이의 오금이 저려올 정도다.
인간사의 감동과 교훈이란 친숙한 공식에 따라 작동하고 수용되기 마련이다. 인생 여정을 험난한 항해나 정상을 향한 산악 등반에 유비하길 좋아하는 인류의 상상력은, 로베르의 저돌적인 맨손 등반에 호소력을 실어줄 만했다. 그러나 그의 기행을 인간 승리 드라마로 환원시키자니 뭔가 허전하다. 당국의 허가가 안 떨어진 마천루는 체포를 각오하고 정복하길 수차례. 이달 5일 또다시 그의 체포 소식이 전해졌다. <뉴욕 타임스> 빌딩에 불법 등반한 것도 부족해 벽에 들러붙은 상태로,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는 펼침막까지 펼친 모양이다. 삶을 감금하고 관제하는 판상형 빌딩만의 상징성을 그 안에 갇혀 사는 현대인은 자각 못한다. 그의 무목적적 극복 대상이 다름 아닌 마천루인 점은 성찰해 볼 만하다. 해서 빌딩 밑에서 관객이 보낸 환호는 대리만족의 한 표현일 것이다. 속세의 성공 모델에 대한 반역, 고착화되고 익숙해진 부조리를 환기시키는 ‘미학적’ 실정법 위반!
그의 모험을 인생 여정의 교훈감으로 보기에 어색한 부분은 또 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 않는 단호함이다. 그에게 실패란 죽음과 동의어다. 가혹한 세상사라지만 실패마다 죽음이 선고되진 않는다. 어느날 홀연 발을 헛디뎌 추락한 사고 소식의 가능성을 떠올려 봤다. 역사상 제일 아름답고 영예로운 실족사로 기록되지 않을까. 그저 성공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한국 사회는 요즘 매일 저녁 그 역풍을 경험하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로베르처럼 앙증맞은 위반을 일찍이 못 배운 걸까?
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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