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07 20:50
수정 : 2008.07.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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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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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20대 초 내 민무늬 정신에 작은 주름을 보탠 문인으로 단연 이문열만한 소설가가 없다. 정치 허무주의, 근왕주의, 관념적 보수성, 군중 불신 등 평단의 집중포화가 투하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 뒤로도 개의치 않았으며, 도리어 그를 두둔하고 싶었다. 우중의 이기심과 기회주의를 예리하게 간파한 <필론의 돼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칼레파타칼라>야말로 이문열 문학을 향한 내 맹목의 진원지였던 탓이다.
군정 종식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노태우 정권 말기, 학원가를 맴돌던 신입생 눈에 총학생회의 군사문화적 위계질서와 대오 갖춘 집단성 역시 부패 정권과 유사한 비중으로 내겐 비쳐서다. 1982년 발표된 그의 장편 <황제를 위하여>의 소장본에는 사인회 때 극성스레 받아온 친필 서명까지 있을 만큼 그를 흠모했다. 이 소설은 계룡산 기슭에 ‘남조선’이라는 왕국을 짓고, 자신을 <정감록>의 정진인이라 믿는 한 몽상가의 삶을 그려냈다. 그의 사리분별은 자신을 황제라 믿는 타협 불가한 허구에 종속되었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허탈한 에피소드는 자기 안에 갇힌 이의 비장미와 희극을 보여준다. 기미년 벽두 삼일운동의 여파가 그의 거처에 미쳤을 때조차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는 군중을 ‘황제 폐하 만세’를 연호하는 신민으로 착각한다. 그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그를 보필하던 수하가 그에 필적할 자가당착에 빠진 탓도 컸다.
이 당연한 귀결은 외부의 변화를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고 해석하려는 자에게 공통으로 관찰된다. 이런 희극적 인물을 내세운 저작 의도란, 이념 과잉과 과학 합리주의 만능 시대의 폐단을 “역설적으로나마 지워 보려는 것”이라 밝힌 서문으로 짐작할 뿐이다. 제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공화제에 어울리지 않는 근왕적 신념이었다. 신간보다 칼럼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 2000년 이후 칼럼니스트 이문열을 나는 더 읽지 않았다. 책등 위로 한문 저자명이 적힌 그의 단행본들 역시 애장 도서목록보단, 그 무렵 내 정신적 나이를 가늠케 하는 지표로 서재에 정렬되어 있다.
황제 하니까 로마의 폭군 네로가 떠오른다. 로마 대화재 때 네로가 불구경을 지켜보며 노래를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는 역사가 타키투스에 따르면 지어낸 이야기란다. 이런 거짓 전승이 금세기까지 이르는 까닭은 네로의 폭정을 견제할 수 없던 민심의 불만이 우회적으로 드러난 경우일 게다.
6월10일 태평로를 메운 촛불 무리를 청와대 뒷산에서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한” 이 대통령은 3㎞ 전방에서 무어라 일치된 함성을 지르는 화려한 불꽃 무리를 바라보며 두 황제처럼 충심의 집단화로 해석한 건가 또는 그저 불구경한 건가. “많은 생각”의 귀결은 시위 자제 요청이었다. 똑같은 불구경이 이제 식상한 것이다. 7월5일 저녁 뒷산에 다시 오르진 않았으리라. 로마 대화재로 인한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고 기독교도가 희생양으로 지목되고 탄압된 걸로 역사는 기록하는데, 서울 도심의 성난 불길을 일망타진할 희생양으로 최근 특정 단체들이 지목되는 사태를 본다. 이 무수한 유사점을 고려해 이 대통령을 차제에 황제라 존칭하는 게 어떨까? 게다가 한국 현대 정치사에 유례없이 ‘산성’까지 갖춘 국가 지도자시다. 21세기 민선 황제의 나라! 외국인 여행객을 유치할 관광 상품으로 국익 창출과 후보 시절 공약인 경제 성장으로 연결될 것이다. 평론가 김현이 <황제를 위하여>의 극중 ‘황제’를 분석한 지문도 이명박 황제론에 자신감을 보탠다. “그는 민주주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황제가 어찌 민주주의를 이해할 수 있으랴!”
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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