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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4 20:54 수정 : 2008.07.14 20:54

박수정 르포작가

야!한국사회

지난주 토요일 밤, 내렸다 그쳤다 하던 비가 장대비가 되어 쏟아지는 보신각 네거리였다. 함께 간 아이는 빗물에 푹 젖어버린 낡은 운동화를 가리키며 “엄마, 지렁이 백 마리를 밟고 있는 것 같아. 민달팽이를 밟고 있는 것 같아”라고 했다. 아이는 한 번도 지렁이나 민달팽이를 밟아본 적이 없건만 그런 말을 한다. 몇 시간 빗물에 불을 대로 불은 발이 불편할 텐데 오히려 새롭게 느끼려고 한다.

촛불 대열에는 여전히 어린이들이 눈에 띈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촛불을 든 어린이들. 그리고 엄마 등에 업힌 좀더 작은 어린이들. 유모차에 누워 있는 아주 작은 아이들. 그 빗속에 웬만하면 하루쯤 촛불행진을 거를 만도 하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이들과 나온다.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나 아이나 모두 고생이다. 다리도 아플 법한데 아이들은 의젓하게 행진한다.

어떤 이는 그런다. 이런 현장에 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느냐고. 그러게 말이다. 한창 자라야 하는 어린이들을 밤잠 못 자고 어른들과 함께 거리로 나오게 만든 건 대체 누구인가. 5월부터 지금까지 촛불을 밝혀 국민 뜻을 전해도 묵묵부답인 정권을 두고 사람들은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누가 대신해 주기를 바랄 수도 없다. 내 문제이고 우리 문제니까. 걷는 일밖에, 구호 외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말이다.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촛불을 들고 걸으면서 사람들은 오만한 정권에 저항한다. 멀리서 마음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광장이 된 거리에서 우연히 촛불을 빌리다가 한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었다. 80년 광주를 겪었던 그이는 그때와 지금을 말했다. 설마 나라가 국민한테 그럴까 하고 거리로 나온, 그 나라를 믿었던 순진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나라에 배반당하고 폭도로 몰렸다며 오늘 이 거리에 나온 아이들과 어른들도 그런 사람들 아니겠냐고 했다.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데 지금 이 정권은 국민의 자존심을 그 밑바닥까지 건드려 이렇게 거리로 나와 저항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 저항하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만난다. 길을 막고 소화기와 물대포를 쏘아대며, 어린아이부터 늙은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대열에 사냥개처럼 전경들을 풀어 아주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정권의 폭력성을. 그냥 나오지 않고 손팻말 하나라도 만들어 자신의 저항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사람들, 무어라도 나눌 것을 챙겨오는 사람들, 생전 처음 봐도 모이면 토론하는 사람들을. 일상에서 드러내기 힘든, 그동안 일상이 억압하고 감추게 한 자신 본연의 모습을.

그리고 그 저항하는 거리 뒤편에서 사람들은 만난다. 행진 대열에서 몇 정거장 벗어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나 전철에 오르면, 환하게 밝은 아침에 집이 있는 동네로 돌아가면 너무나 다른 세상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문제나 의료보험 민영화, 물 사유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교육, 언론장악 문제들에 아직은 무심한 가족, 친지, 이웃, 친구, 직장동료를. 스스로 깨치고 행동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온갖 덤터기를 씌우는 보수언론과 세력들을.

저항하는 거리와 그 뒤편의 사이가 아직은 멀기에 사람들은 할 일이 많다. 그동안 못 보았던 사회의 문제도 생각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하자고 알려야 하고, 어쩌면 삶을 재구성해야 하고 …. 석 달이 되도록 끄떡도 않는 현실에 오히려 자신을 단단히해야 할 때다. 우리 발밑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리 발은 어떻게 느끼는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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