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7 20:28
수정 : 2008.11.1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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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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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있다. 악기점을 지나면 “저거 아빠가 만든 기타야”라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말했다. 텔레비전에 콜트(Cort)가 새겨진 기타가 나오면 마음이 뿌듯했다. 출근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해야지, 안 그러면 총무과 대리한테 욕을 들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작업량을 맞추려고 새벽 6시에 나와 공짜 노동을 해야 했는데도 말이다. 25년간 기타에 칠을 한 도장 노동자가 모세혈관기관지염으로 쓰러져 ‘뿌리 없는 나무’처럼 돼도 중환자실로 쫓아가 사표를 강요한 회사, 소음성난청 산재 판정이 나자 비로소 귀마개를 내준 회사, 돈 백만원 드는 방음장치를 설치했다고 산업안전관리자를 쫓아낸 회사, 생산직 노동자한텐 임금동결을 강요하고 관리직과 임원직은 임금인상·성과금을 챙기는 회사…. 그래도 노동자들은 자신들 손을 거쳐 나온 기타를 내치지 않았다. 피와 눈물로 만든 기타였기에.
한 사업주 아래, 인천 부평에 있는 콜트악기 노동자는 15~25년, 콜텍 대전공장 노동자는 10~15년씩 일했다. 콜트노조는 21년, 콜텍노조는 이제 2년이 되었다. 공장 설립 15년 만에 콜텍노조가 생긴 건, 그간 회사가 잘해줘서가 아니라 현장 통제가 심해서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돈을 벌어주는 수단, 콜텍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기 전엔 “노예였다”.
콜트는 35년간 발전했다. “고무신을 신고 자전거를 타다 포니 자동차를 몰던 사장은 이제 외제차”를 탄다. 인천 남동공장, 인도네시아·중국 공장도 있다. 해외공장을 만들 때 노동자들은 회사 발전이라 여겨 기뻤다. 그래 두 나라 연수생에게 성심껏 일과 기술을 가르쳤다. “인도네시아·중국 노동자들이랑 함께 잘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잔업과 연장근로가 사라졌다. 기본급이 약한 임금체계에서 노동자에겐 치명적이었다. 현장 인력이 줄었다. 해외생산기지 마련, 기술 이전, 자연 인원감소를 이룬 자본은 남은 노동자들이 거추장스러웠다. 싹 정리하고 비정규직으로! 고무신에서 외제차로 사장의 이동수단은 바뀌었지만, 노동자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고무신 시절에 머물렀다. 인격이 있고 사고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값싸게 부릴 머슴을 원할 따름이다. 내내 흑자였다 한 번 난 적자, 물량, 바이어를 핑계로, 구조조정·정리해고·명예퇴직·휴업·폐업이 두 회사에서 벌어졌다. 노조가 여러 자료를 근거로 따져보니 위장폐업이었다.
‘위장폐업 분쇄, 공장 정상화!’ 요구 일년. 10월15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조와 함께 양화대교 송전탑에 오른 콜텍 이인근 지회장이 11월13일 땅으로 내려왔다. 공중에서 삭발하고 18일간 단식했지만 상황은 변화가 없다. 콜텍 10년차, 이런 투쟁은커녕 노조도 생각 못한 이 노동자는, 노조 일년 되는 날 아침 출근했다가 잠긴 공장문 앞에서 동료들과 분노했다. ‘콜트노조 정리해고 분쇄투쟁’에 연대했다고 폐업을 위한 휴업공고를 때리는 회사, “회사에 헌신한 노동자를 배신하고 거리로 내모는 자본의 비정함과 세계적인 악기를 생산한다는 기업주가 사회적 책무를 버리고 야반도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에. 콜트 21년차, 방종운 지회장 가방엔 자료가 가득했다. 두 노동자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돈이 아닌 인간으로 볼 때 노동문제는 풀릴” 거라며 “어린 연예인도 나눔의 행복을 아는데 1200억이라는 돈을 갖고도 부족해 주머니를 채우려는” 돈의 노예가 된 기업주를 불쌍해했다. “피와 눈물로 만든 노동조합”이 원하는 건 최소한 “상식과 진실, 정의”가 통하는 사회다.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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