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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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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우리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뭐 그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다. 외려 소비가 위축되어 걱정이라는 뉴스만 만발이다. 새삼 이 체제가 절약을 미덕으로 삼지 않음을 알겠다. 탄탈로스의 욕망을 부추겨 허덕허덕 넘치게 소비하게 하면서 지구 자원을 고갈시키고 (인간) 자연을 약탈하는 낭비의 체제라니. 고전경제학의 저 합리적 소비자는 알뜰함을 추구하는데 소비자본주의는 그것마저 마케팅에 활용한다. 각종 포인트 카드, 세일, 상품권 행사 등은 사람들의 절약정신에 호소해 더 쓰게 하는 것이다. 20만원어치 사면 만원 상품권 준다, 17만원밖에 안 썼네, 5만원 더 써 아귀 맞추자. 언젠가는 쓸, 어쨌든 버리지는 않을 물건 사두고 만원 공짜로 받으니 이익? 고 최진실의 히트 광고말 제2탄은 티코 차 선전의 “아껴야 잘살죠”다. 당시 우리는 그걸 “아껴야 큰 차 사죠”로 알아들었다. 자본주의가 절약을 강조할 때 그것은 아껴 모아 한꺼번에 ‘삐까뻔쩍하게’ 쓰라는 얘기다. 경제위기를 대하는 생활인의 자세를 생각해 본다. 생산자로서 개인은 고용주에게 절대 약자다. 그러나 소비자로서는 ‘왕’은 아닐지라도 주체성을 발휘할 여지가 많다. 더욱이 경제는 생산과 소비가 맞물려 이루는 순환이니 소비는 생산의 짝패이다. 그리고 생산의 목적이 아무리 이윤 창출이라도 그 인간적 내용은 고용 창출이고 보면 결국 소비는 고용을 견인할 수 있다. 아무리 줄여도 써야 할 것은 있으니 각자 지갑 두께에 따라 제대로 써주자. 첫째, 주인 있는 상점 이용하기. 요즘엔 어째 삥 뜯을 수도 없게 주인은 없고 맨 종업원뿐이냐고 조폭이 애로를 호소한다나.(미국영화 <굿 나잇 굿 럭>에서 그런다.) 자영업자가 하는 곳, 혹 종업원뿐이라면 그들의 노동 조건이 괜찮아 주인의식이 있는 곳, 그곳에 가자.(조폭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소리 아니어요.) 둘째, 걸어가서 사기, 즉 지역적 소비의 세밀화. 차 끌고 대형마트 가서 바리바리 사다 80% 쓰고 버리지 말고, 동네 슈퍼에서 조금씩 사다 알뜰히 다 쓰기. 대형서점에선 문구 구경만 하고 책은 동네 서점에서 사기.(참고서만 있는 것 같아도 며칠 전에 주문하면 다 갖다 놓는다.) 지겹게 똑같은 체인 커피점 말고 동네 예쁜 커피집 가서 폼잡기. 셋째, 합당한 가격으로 사기. 텔레비전을 보니 배추가 풍작이라 값이 뚝 떨어졌다는데, 한 주부가 저는 싸게 사서 좋지만 농민들 고생이네요 하더라. 물건 뒤의 인간을 보는 마음, 상식의 맑은 기운이다. 어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10년 전 가격에 판다면 의당 궁금해야지. 그동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그게 가능하대니? 힘없는 납품업체 죽도록 쥐어짜 지가 선심 쓰며 호객하는 저질 장사꾼쯤 무시해주는 여유, 피난민 시절도 아니고 이제는 있(어야 하)는 거다. 우리는 합리적 소비자 개념에 홀려 사명감을 갖고 물건 값 깎아 버릇하는데, 바가지 썼다는 피해의식 생기기 전에 그냥 선선히 사면 마음도 가볍다. 넷째, 경제와 선물의 경계 넘나들기. 음식 배달원께 동전은 가지세요, 택시 기사분께도. 팁은 술집에서 찔러주라고만 있는 거 아니다. 현금이 꼭 가야 할 곳, 요긴한 곳으로 흐르도록 신경 쓰는 마음, 자본주의의 도도한 바다에 약한 이가 숨 돌릴 작은 섬들 만들려는 노력들. ‘견딜 수 없이’ 소박한 발상? 궁극적으로야 덜 쓰고 윤리적으로 써 거품도 빼고 인간을 돌보는 경제를 만들어 나가야겠지. 경제위기다. “그러나 위급(이머전시)의 상황은 언제나 신생(이머전스)의 상황이기도 하다.”(호미 바바)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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