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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0 19:25 수정 : 2008.12.10 19:25

정정훈 변호사

야!한국사회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라는 ‘책’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당시 현실의 노동법은 그저 장식물로 기능하는 허울에 불과했다. 그가 밤을 새우며 보았던 근로기준법에도 최저임금제의 근거 규정이 있었지만,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1970년 결국 그는 법전에 불을 붙여 스스로를 불사르며 요구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최소한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한 당연한 주장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였다.

4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의 법이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빈총에 불과했다면, 오늘의 법은 총구를 노동자에게 돌려 겨냥하는 장전된 총이 되었다. 비정규직보호법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최근의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최저임금법 개정이라는 또 하나의 총알을 장전하고자 한다. 월 80만원이 안 되는 최저임금을 공격하기 위해 보고서와 건의문을 써내는 경제단체, 이를 곧바로 반영해 법률안을 제출하는 국회의원들, 그 법안을 지지하는 노동부 장관. 그들은 벼랑 끝 삶에 대한 모욕을 법률에 담으려 한다.

최저임금법은 노동자의 최저 ‘생존’을 요구할 뿐, ‘존엄’한 삶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최저임금은 자녀들의 대학등록금에 대한 고민이나, 전셋집 한 칸 장만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33살 이하 미혼 단신근로자 월평균 생계비인 137만원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최저임금은 단지 한 개체가 인간으로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차갑게 선언하는 것일 뿐.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더 양보하란 말인가? 어떻게 더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인가?

“고령자와 저숙련 근로자들의 고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저임금제 완화를 추진한다는 노동부 장관의 말은 2008년 연말 최악의 농담이다. 진정으로 임금을 나누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당신들의 발상이라면, 그동안 천정부지로 올라간 경영진(CEO)들의 연봉을 제한하고, 당치도 않는 법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들의 세비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어서 하라. 이런 접근이 위헌적이고, 반시장적이라고? 벼랑 끝 한계상황에 몰린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반인간적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방식은 우리와는 다르다. 노동자들의 작업장 점거농성에 대한 당선자 오바마의 평가는 “노동자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노동조합 결성권을 개선하는 ‘노동자자유선택법’을 지지하며, “우리는 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우리의 노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미국은 노동자의 생존과 존엄의 기초 위에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오바마에게서 ‘담대한 희망’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해야 하는가? 재계-국회-정부로 이어지는 천박한 인식의 폐쇄회로를 들여다보면, 숨이 막힐 듯 답답하기만 하다. 그들의 보고서, 법률안, 정책에는 인간의 ‘존엄’은 물론이고 ‘생존’에 대한 일말의 고려도 없어 보인다.

정말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만약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법률로서 효력을 갖게 된다면, 나는 내 모든 법전에서 그 부분을 찢어내 화장실 변기에 던져 넣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해야 할 한마디는 “똥 덩어리!” 인간을 근본에서부터 모욕하는 그건 법이 아니다. 법전의 찢겨져 나간 자리에는 ‘착취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법치국가’라는 제목의 백무산의 시를 끼워 넣을 것이다. 시의 일부를 미리 인용해 둔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너희들끼리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다스리는 국가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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