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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5 19:49 수정 : 2008.12.15 23:04

이범 교육평론가

야!한국사회

구미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 교육에서 ‘유난히 촌스러운’ 제도가 발견된다. 첫째, 내신성적표에 석차가 매겨진 것. 선진국의 학교 성적표를 보면 A, B, … 식의 평점이 있을 뿐(가끔 점수까지 나오는 나라도 있지만) 몇 명 중에 몇 등인지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쓸데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둘째, 국정·검인정 교과서 제도. 이것은 교사가 수업을 자신의 의지대로 못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불필요한 규제인데, ‘규제 철폐’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파가 이를 두곤 꿀먹은 벙어리인 건 참으로 희한하다. 셋째, 문·이과를 구분하는 제도. 나는 20년 전에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붙으면 이과, 떨어지면 문과’라는 식으로 동전 던지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자녀 세대까지 이런 후진적인 제도가 유지될 걸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넷째, 대학별 고사. 대학에서 본고사나 논술고사를 출제하고 채점하는 데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들의 상식이다.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의 면접고사가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다섯째, 고입 선발경쟁. 미국·영국에 소수 부유층용 명문 사립학교가 있긴 하다. 이런 학교는 등록금이 워낙 비싸고 입학 조건으로 부모의 재정증명을 요구하기도 하는 터라, 중산층 이하에서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일 뿐이다. 즉 고입 선발경쟁은 보편적 현상이 아니다.

이 다섯 가지 촌스러운 제도의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일본식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사교육, 역사교과서 논란, 청소년 자살, 왕따(이지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등 많은 특징을 일본과 공유하는 것은 일본식 제도인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일제 잔재를 청산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적극적으로 의제화한 게 고작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나 ‘내신으로 대학 가자’ 수준의 한심한 것이었고, 다만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안이 유럽형 교육제도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단계로서 정교화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내가 역사교과서 논란에 다소 거리를 두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분명 뉴라이트와 현정부의 교과서 공세는 치졸하기 짝이 없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교과서 서술을 어떻게 못박을 것이냐가 아니라 이를테면 박정희의 공과를 놓고 탐구·토론형 수업을 진행할 권한과 여건이 교사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졌느냐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역사교과서 논란은 분명 과잉 정치화돼 있고,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어떻게’ 배우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은근히 은폐한다.

일제고사 또한 기초학력에 못미치는 ‘미도달’ 학생들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정부는 지금까지 일제고사만 치를 뿐, 미도달 학생들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제고사를 반대하려면, 핀란드처럼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방과후에 미도달 학생들을 위한 ‘나머지 공부’를 하자고 주장해야 맞지 않을까? 지난 10년 나머지 공부의 전통은 눈에 띄게 약화되었고, 결과적으로 학원에 다니기 힘든 저소득층 자녀들이 가장 피해를 봤다. 이 추세를 방관한 사람들이 지금 핀란드 운운하는 것은 핀란드 교육에 대한 모욕이다.

경쟁 경감? 좋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주입식 수업과 석차 매기기 관행에서 벗어난 학교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현실화하는 것. 그리고 교사들을 관료적 제약에서 해방시켜 더 많은 권한을 주면서, 동시에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것. 이것들을 ‘정책’ 수준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우리 교육의 주도권은 계속 ‘일본파’가 쥐게 될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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