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22 20:51
수정 : 2008.12.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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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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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내가 십년 전에 고등학교 자퇴생이 되어 무직 청소년의 신분으로 도대체 어떻게 뭘 하면 좋을까, 하고 헤맬 적에 특별히 ‘자퇴생’이라는 딱지를 자의적으로 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진 퇴학’이었지만 반은 타의였다. 아마 하는 말마다 ‘빨갱이’스러워서 얼른 내보내 버리는 것이 수라고 여겼기 때문이었겠지만, 자퇴원은 십분 이내에 즉각 수리되었다. 퇴학이라는, 당시로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에는 개인적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은 우열반 편성을 비롯해 줄 세우기 교육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이 앞섰다.
입학식 날 ‘대학만이 너희들의 존재 목적이다’ 운운하는 훈화에서부터 시작해 성적에 따라 각자 다른 반으로 이동시켜 과목별로 수업 받게 하기, 성적순으로 출석 부르기, 최하위 조나 반에 공동생활의 당연한 의무인 청소나 정리 등을 도맡게 함으로써 열등한 자의 모멸감을 내면화시키기 등등. 나는 그곳에서 행복한 아이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와서도 행복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줄 세우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탈영병의 기분으로, 죄책감을 껴안은 채 나는 오랫동안 기도했다. 그 경험을 <네 멋대로 해라>라는 책으로 적으면서도 그런 기도하는 마음은 동일했다. 제발, 뒤의 아이들은 다르게 살기를. 학교에서 행복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다만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하지만 12월11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초를 켜 든 채 서 있는 모습을 보면, 학생 수가 줄어든 것을 빼고는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는 듯했다. 암암리에 자행되던 줄 세우기 교육은 ‘일제고사’라는 이름으로 아예 공식화되려 하고, 이에 반대한 일곱 명의 교사들은 파면과 해임이라는 극단적 조처를 당했다. 그중에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교사도 있다. 그들은 아마 십년 전 내가 쫓겨난 교실에서 줄 세우기 교육을 숨죽이며 견디어 무사히 졸업해낸 아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교사의 입장으로 그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줄 세우기 교육에 저항했다. 십년 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거꾸로 가는 교실은 나를 토해냈듯 선생님들을 학교 밖으로 뱉어 버렸다. 꼴찌를 한 조나 반에게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쥐여 주며 이것은 너희가 할 일이란다, 하고 가르쳤던 교실은 십년이 지난 뒤에는 아예 아이들에게 번호표를 붙여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일제히 세운 다음, 끝에 있는 아이들에게 교실이나 화장실 청소처럼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직업 쪽으로 화살표를 붙여 친절히 안내해 줄 모양이다. 신자유주의의 그 기막힌 주문, ‘이 모든 것은 네 탓이란다’를 확성기로 소리치면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차기 교육감으로서의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마법의 언어처럼 “빨갱이! 빨갱이다! 빨갱이에게 아이들을 맡길 셈입니까!”라는 외침 한마디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교사들을 파문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들의 귀에는 “빨갱이다!” 하는 소리 없는 외침 이외에는 들리는 것이 없다. 길고 지난했던 2008년의 여름, 촛불이 아무 소용 없었다는 자조감을 지울 수 없다 해도 별수 없다, 폭탄을 들 용기가 없는 바에야 촛불을 들 수밖에. 교육청 앞의 추위는 거셌고, 그 추위를 막기에 촛불은 너무나 작았다. 그래도 어른들의 여덟 박자 구호에 익숙하지 않아 조금 더듬거리다가 이내 까르르 웃으며 자기네끼리 “공정택 왜 나댐?”이라고 외치던 그 소녀들을 위해서라도, 한때 당신과 내 안에 살았던 그 소년 소녀들을 동조시켜서 같이 소리치자. “공정택 왜 나댐?”
김현진/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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