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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9 22:00 수정 : 2009.04.29 22:00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야!한국사회

한국의 대학등록금을 보면, 사실 기가 막힌다고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학등록금 문제 그리고 사교육 문제라는 두 가지 문제는, 경제학자로서 내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깊은 자괴감을 갖게 만든다. 이 점에서 지금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행정가라고 하는 사람들 혹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 모두 시대의 죄인이다. 한국에서 최소한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기가 막힌 시대 앞에서 석고대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 150명만 결심을 하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문제의 초점이 조금 명확해질까?

1990년의 일이다. 파리의 어느 대학에서 처음 대학원 과정 등록을 할 때, 내 기억으로는 6만원 정도를 연간 등록금으로 냈다. 당시 한국에서 한 학기 등록금이 100만원 되기 전에 졸업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나에게, 이 6만원짜리 연간 등록금은 상당히 큰 문화 충격이었다. 1995년에 마지막 냈던 등록금이 당시 박사과정 교수 지도비까지 합쳐서 10만원 정도였던 기억이다. 이러던 등록금이 20년간 많이 올랐는데, 우파 정권으로 바뀌면서 너무 많이 올라 때때로 파리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하 시위를 하고는 한다. 지금은 40만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독일은 아주 많이 올랐는데, 100만원 조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이걸 못하는 건가, 안 하는 건가?

어쨌든 연간 천만원 가뿐하게 넘어가는 등록금을 내고 학교 다니는 학생들 표정을 보면, 난 늘 시대의 죄인이 된 것 같은 우울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저 돈들을 어떻게 내고 다니는 것일까? 여기에 놀라고, 그렇다면 그런 학생들은 최소한 천만원 수준의 교육 서비스를 제대로 받고 있을까라고 질문해보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백명 이상 때려 넣는 수업들이 즐비하고, 조금만 인기가 없는 전공과목들은 수강인원 부족으로 폐강되기 일쑤이다. 나는 사교육에 반대하지만, 지금의 대학 대신에 차라리 사교육 학원을 활성화시킨다고 하면 여기에는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일본의 경우는 학부 3학년부터 열명 안팎이 참가하는 세미나 수업이라는 게 있다. 1~2주에 한 권 정도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종합적 사유를 길러주고, 독서와 토론능력을 키워주는 수업이다. 당연히, 학생들에게 도움 되는 수업방식이다. 천만원씩 받을 거면, 당연히 학부에 이런 세미나 수업도 열어주고, 독서용 교재도 학교에서 사주는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 대학생들” 하면서 혀를 끌끌대고, “스펙 준비에만 몰두하는”이라고 욕부터 하기 전에, 정말로 대학이 대학다울 수 있는 기본 서비스 정도는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천만원씩 받을 때에는 그 천만원이 설명될 수 있도록, 그야말로 상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상도의라도 지키면 좋겠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부탁한다. 앞으로 대학에 보조금 지원할 때, 시설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세미나 수업의 개설 여부와 운영실태와 연동하면 좋을 것 같다. 최소한 2년 동안이라도, 교수들과 자신의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여건은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토론 교육이 좋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은 다를 수 있고, 견해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토론 속에서 그런 다른 생각과 견해를 종합하는 훈련의 기회, 대학에서도 그런 걸 안 주면 어쩌란 말이냐? 창의성은 화려한 건물이나 으리으리한 쇼핑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읽고, 듣고, 주장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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