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5.06 21:45 수정 : 2009.05.06 21:45

정정훈 변호사

야!한국사회

현행 집시법상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집회에 해당할까? 조금 더 나아가 기자회견은 어떨까? 이해하기 어렵지만, 축구는 집시법 규정상 명백히 집회에 해당한다. 기자회견도 집회에 해당할 수 있다. 단 축구는 신고 의무가 없지만, 기자회견의 신고 의무는 ‘그때그때 다르다’고 한다. 한마디로 바꿔 말하면 ‘엿장수 마음’이다.

집시법상 축구에 대한 법적 평가는 ‘축구 집회’다. 법적으로 말하자면 “축구하러 가자”가 아니고 “축구 집회하러 가자”가 맞다. 조기축구회 회장은 축구 집회의 주최자가 될 수 있겠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공 한 번 차면서도 집시법 규정을 알아야 한다. 주최자로서 조기축구회 회장은 질서를 유지할 의무가 있고, 질서 유지가 어려우면 ‘축구 집회’의 ‘종결’을 선언하여야 한다. 이제 공을 차다 시비가 붙어 집단 몸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조기축구회 회장은 쿨하게 집회 ‘종결’부터 선언할 일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규정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버티고 있다. 어디서부터 고장이 난 걸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집시법을 직접 읽어 보아도 좋겠다. 집시법을 보면서 이해가 어렵다면 결코 시민들의 잘못이 아니다. 읽어서 알 수 없는 법을 만든 국회의원과 법률가들이 반성할 일이다.

집시법으로 들어가 보자. 법은 ‘옥외집회’를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집회”로 규정하면서, 정작 ‘집회’ 자체가 무엇인지를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학문·예술·체육·종교·의식·친목·오락·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는 신고 의무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집회가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것은 법원이 할 일이다. 대법원은 집회를 “일정한 공동 목적을 위한 다수인의 일시적 회합”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축구에 대한 법적 평가다. 축구라는 공동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였으니 ‘집회’고, 체육 또는 친목, 오락 집회에 해당하므로 신고 의무가 적용되지 않을 뿐이다.

기자회견에 이르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축구에는 신고 의무 적용을 배제하는 법률의 규정이 있으나, 기자회견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신속성을 요하는 기자회견에 48시간 이전의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위험하고, 또 우습기 그지없다. 그러나 대법원의 개념 정의에 의하면, 기자회견도 집회에 해당할 수 있다. 하물며 축구도 집회에 해당하는데, 기자회견이라고 다를 것인가? 언론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기자회견을 집회로 파악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는 법률상 집회 개념의 불명확성 때문이다. 법원은 이 궁지를 “순수한 기자회견”과 이를 빙자한 옥외집회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법원의 해석이 아니라, 집시법 전체를 다시 규정하는 입법으로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며칠 전 경찰이 기자회견 과정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무더기로 연행한 사건의 발단도 마찬가지다. 현행 법률은 경찰, 법관, 시민 모두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자회견의 내용에 따라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위험성을 열어놓고 있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것이 기자회견을 불법 집회로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면, 그야말로 엿장수 가위질을 하고 있는 격이다.

집시법상 집회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은 상식이다. 더 나아가 제한을 강화하려는 ‘촛불 복수극’의 노력은 정치를 사유화하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시민들의 정치를 위해 집시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할 일이다. 축구도, 기자회견도 집회의 추문에서 자유롭도록.


정정훈 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