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7.08 21:14 수정 : 2009.07.08 21:14

김중혁 소설가

날이 덥다. 후텁지근하다. 장마다. 비가 많이 왔고, 피해도 많다. 모든 게 다 날씨 때문이다,라고 몰아붙이고 싶은 날씨다. 그래도 날씨가 무슨 죄가 있나. 날씨를 탓하는 건 인간뿐이다. 덥다거나 춥다는 기준이 어디 있나. 비가 많다거나 적다는 기준이 어디 있나. 여우들은 산책을 나가려다 비 때문에 기분 잡치는 일이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가 보다, 눈이 오면 또 눈이 오는가 보다, 그럴 것이다. 시간 단위로 날씨를 예측하고 비와 바람과 눈과 파도에 이토록 민감한 것은 인간뿐일 것이다. 자연이 인간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질 않으니 답답한 게다. 인간들이 수년 동안 쌓아올린 것을, 자연은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몇 시간 만에 몇 년치를 잡아먹는다. 우리는 속절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비와 눈과 바람도 다스리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쉽지 않다. 홍수 피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방법은 없는 것인가, 묻게 된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지점은 없는 것인가, 묻게 된다.

강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표현은 오만하다. 자연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오만할 뿐 아니라 적절치 못하다. 남이 죽여 놓은 걸 우리가 살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죽인 거니 생색낼 것 없다. 의문도 많다. 강을 살려야 한다,라는 표현을 쓸 만큼 강이 죽어 있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실제로 강을 살릴 수 있는 것인지, 지금의 계획이 말 그대로 강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강을 살린다고 시작해 놓고선 몇몇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만 살리는 건 아닌지, 궁금한 게 많다. 걱정도 많다.

걱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 신문에 실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터뷰 때문이다. 유인촌 장관은 청계천 복구를 4대강 정비사업과 연결시켰다. 청계천 복구가 하나의 문화정책이었듯 4대강 정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수질이 좋아지고 환경이 나아지면 자전거도로가 생기고 크루즈도 뜨고 국토환경이 바뀌는’ 문화정책이 4대강 정비사업에 포함돼 있다는 거다. 청계천에서처럼 남녀가 4대강 강변을 거닐고, 온 가족이 강가로 나들이 나가는 풍경을 꿈꾸는 거다. 청계천에서처럼 모두 카메라 하나씩 들고 ‘자, 이쪽을 보면서 웃어 보세요’라고 할 만한 인공적인 세트를 꿈꾸는 거다. 그게 문화적이라는 건데, 나와는 문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강을 살려야 한다면 강만 살리면 된다. 문화 같은 건 잠시 잊어도 좋다. 강만 살리면 그게 곧 문화가 된다. 강만 살리면 다른 것은 부러 만들지 않아도 자연히 만들어진다. 자꾸만 의심이 드는 건 그래서다. 강을 살린다는 게 강 주변에 놀이시설을 만든다는 뜻으로 들려서 불안한 것이다.

이제는 그런 강박 좀 벗어도 된다. 놀지 말고 뭐라도 자꾸 해야 할 것 같은, 뒤집어엎지 않고 개발하지 않으면 어쩐지 불안한 마음을, 잊어도 된다. 국민을 위해서, 자꾸 뭔가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려도 좋다. 강을 우리가 살리지 않으면 누가 살리겠어, 같은 오만한 마음은 잊는 게 좋다. 우리가 대단한 존재들인 것 같은 착각을 버리자. 강을 살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기나 하자. 어떻게 하면 해마다 되풀이되는 홍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강에 들어 있는 자원을 최대한 오랫동안 이용할 것인가. 그 방법을 찾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리들은 거대한 장거리 경주에 참가한 릴레이 선수일 뿐이다. 최선을 다해서 뛰고, 다음 선수에게 바통이나 제대로 전해주자.

김중혁 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