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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29 20:48 수정 : 2009.07.29 20:48

김중혁 소설가

팝콘 때문에 짜증나서 못살겠다. 극장에 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제는 팝콘 냄새가 극장의 아이콘처럼 돼버렸지만 느끼한 냄새도, 쩝쩝거리는 소리도, 종이상자를 긁는 소리도 참을 수가 없다. 화면에서는 주인공이 슬퍼하고 있는데, 사방에서 부스럭거린다. 나만 예민한 건가. 극장의 입구에는 ‘영화 관람에 방해되는 음식은 반입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는데 팝콘 냄새와 소리는 영화 관람에 방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극장의 주수입원이 팝콘과 콜라 판매라고 하니, 영화 싸게 보려면 그 정도 불편은 참아야 하나. 멀티플렉스라고 이름 붙인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 종류도 멀티하지 않다. 팝콘이 주수입원이라 상영 영화 선정도 팝콘과 어울리게 하는 건가. 이러다가 영화감독들이 팝콘 먹으며 볼 수 있는 영화만 만들어내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 정도다.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한 영화가 상영되고 비슷한 맛의 팝콘을 먹을 수 있다. 이런 게 바로 문화의 평준화인가.

동네 극장에 가는데도 동네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멀티플렉스란 게 생기면서 동네 극장이 사라졌다. 전국의 모든 멀티플렉스는 시설과 디자인도 비슷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동네가 구분되지 않는다. 동네에 있긴 하지만 별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어쩌면 전국의 모든 멀티플렉스는 비밀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상상도 하게 된다. 가스 제닝스 감독의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이라는 영화의 동네 극장에서는 동네 꼬마가 심심풀이로 만든 영화를 상영해준다. 아는 동네 사람 얼굴 보는 맛에 모두들 재미있게 본다. 나도 그런 상상을 해본다. 영화 시작 전에 동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만든 단편 영화 한 편을 전채로 맛본다면 어떨까. 꿈 깨자. 영화 상영 횟수를 한 회라도 늘리기 위해 상영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빡빡한 세상이다.

동네란 게 남아 있긴 한가. 동네 서점은 하나씩 줄어들고 있고, 동네 극장은 소멸 직전의 단계이며, 동네 구멍가게들은 위태롭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동네의 마지막 상징이자 보루였던 구멍가게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하다.

나는 한때 구멍가게집 둘째 아들이었다. 벼랑 끝 사람들 기분을 알 것 같다. 동네 어귀에 있던 우리 집은 기능이 많았다. 우선 우리 집은 가게이기 이전에 동네 주민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토론장이었으며, 동네를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에게는 길 도우미가 되어주었고, 상영중인 영화 포스터를 붙인 유리창은 문화게시판 구실을 했다. 생필품은 물론 과일도 팔았고 생선도 팔았다. 멀티라는 건 이 정도가 되어야 써먹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무작정 그때가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네보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고, 더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동네가 사라진다는 건 안타깝다.

동네가 사라진다는 건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의 이름이 사라지고 가격표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름을 불편해한다. 얼굴을 보면서 값을 깎는 대신, 미안한 얼굴로 외상을 하는 대신, 여름맞이 특별 할인상품을 사는 게 마음 편하다. 주인아주머니가 얹어주는 덤보다 이미 상품에 붙어 있는 원플러스원이 더 이득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리 동네의 이름이 지워진다. 누구네 가게, 누구네 철물점, 누구네 이불집 같은 이름이 사라지고 슈퍼슈퍼마켓이라는 섬뜩한 명칭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수많은 이름들이 지워지고 난 자리에 들어선 슈퍼슈퍼마켓을 보고 있으면 나는 자꾸만 팝콘이 떠오른다.

김중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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