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2 19:03
수정 : 2009.08.0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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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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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초·중·고교의 과목 수를 축소할 방침임을 발표했다. 과목 수를 축소한다고 해서 일부 과목이 폐지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 학기에 지나치게 여러 과목을 배우도록 하는 것보다는, 일부 과목은 특정한 시기에 몰아서 집중적으로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와 더불어 학교별로 과목별 편성시간을 20%의 범위 내에서 증감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준다는 데 있다. 이럴 경우 국·영·수 시간이 늘어나면서 입시과목이 아닌 과목들은 찬밥 신세가 될 우려가 있고, 이때 ‘찬밥’이 될 과목의 교사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목 편성을 획일적으로 하면 좋은 것인가? 그것은 강력한 붕어빵 교육시스템을 유지하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설득력도 없고, ‘밥그릇 싸움’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오히려 정부 정책을 받아치면서 ‘국·영·수 중심의 대입시험을 뜯어고치라’고 요구해야 맞다. 영국은 대입시험에서 ‘공통필수’ 과목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며, 프랑스는 공통필수과목이 한 과목(철학)뿐이다. 미국의 에스에이티(SAT)는 수학과 언어가 공통필수과목인데 수학은 우리나라 중학교 수준이고 언어영역은 비문학만을 평가한다.(고등수학과 문학은 선택과목이다) 유독 우리나라는 국·영·수 모두 골고루 잘할 것을 요구하는 이상한 대입체계를 갖고 있다. 우리의 대안은 학교별 과목편성 자율권에 더하여 학생의 과목선택권 확대를 요구하고, 수능에서 공통필수과목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희망하는 전공에 따라 서로 다른 과목의 시험을 치르도록 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등학교 학교선택제가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일환이므로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이 ‘선택권의 확대’를 모토로 내세웠다고 해서, 모든 선택권이 신자유주의에 오염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핀란드는 중학생 연령대에 이미 교과목의 20%가 선택과목이고, 고등학교의 경우 이수학점 75학점 가운데 45학점은 필수과목이고 30학점은 선택과목이다. 핀란드 고교생들은 무학년 학점제하에서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탐색하고 대학에서의 전공도 모색한다.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은 모두 오랫동안 고교별 특성화와 학교선택제를 운용해왔다. 심지어 인기 고교에 지원자가 몰리면 내신성적 순서로 자른다! 우리의 주장은 학교선택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기 학교에 대한 집중지원책을 실행하는 한편 학교별 특성화와 무학년 학점제를 도입하면서 이를 기회로 특목고를 폐지하자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일제고사를 반대한다. 하지만 ‘일제고사 보기 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하여 철저한 방치와 무관심으로 일관한 시스템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도대체 어떻게 수용하란 말인가?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가려내고 보완교육을 시킬 것인지 얘기해 보자. 나는 이미 본란을 통해 핀란드식으로 해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이다.
이명박 정부의 ‘닭질’이 계속되면서, 반이명박 정서에 기대어 다음 권력교체기에 광범위한 민주-진보개혁 연대가 이뤄지면 한방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교육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라면, 나는 그에 반대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겠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진보가 아니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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