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9 20:27
수정 : 2009.08.0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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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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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앞은 뜨거웠다. 그늘 하나 없이 무덥지만 저 안에 더 무덥고 목마른 사람들이 있으니 불평할 수는 없다. 물이 끊긴 지는 오래고 그날부로 전기도 끊었다 했다. 그뿐 아니라 의사고 의약품이고 들어갈 수 없다고, 문 앞을 지키는 사람들은 완강했다. 정문 앞에는 회사 쪽에서 만든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생수가 넘쳐난다”, “생수로 샤워한다”. 저놈들에게는 물이고 의사고 약이고 필요없다는 거다.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증오심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생수를 반입하게 해 달라는 실랑이가 안타깝게 계속되던 날이라,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보려고 물을 입에 대지 않은 채 그날 하루를 보냈다. 24시간을 넘기자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애가 타서, 차라리 회사 쪽 말이 맞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정말로 생수로 샤워하고 생수가 넘쳐나는 거였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사람이 살고는 봐야 할 것 아닌가.
농성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물을 전달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당연히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 물병을 하나씩 든 사람들의 수는 몇 겹으로 막고 있는 용역들과 경찰의 수에 비해 하염없이 초라했다. 회사 점퍼를 입고 “정상조업”이라고 쓴 주홍빛 완장을 찬 회사 쪽 직원까지 합치면 더했다. 차라곤 하나도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여러분은 도로에서 불법 집회를 함으로써 교통에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습니다…”라는 경찰 방송은 머쓱했다. 당연히 물은 단 한 병도 들어갈 수 없었고, 철조망 너머 있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비해고 노동자들과 이쪽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같이 일한 사이에 이럴 수 있냐”, “×× 같은 니 남편 때문에 우리까지 이 꼴이다”. 갑자기 벽돌 조각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퍽 하고 누가 맞는 소리가 난다. 어디서 손가락만한 너트가 날아온다. 그 안에서 돌 던지지 말고 나와 보라고 누가 악을 썼다. 잠시 후, 진짜로 나왔다. 이 새끼, 니네 회사도 아니잖아, 니 일이나 똑바로 해. 퍽, 퍽 하는 소리가 나는데 경찰은 천연덕스럽게 조용해서 원망스럽다. “우리 의원님 의정활동 하시잖아!”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팔다리를 들려 순식간에 경찰버스 안에 실렸다. 다음 차례는 국회의원이고 뭐고 없다. 팔다리가 붙잡힌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카랑카랑하게 소리치며 버스 안으로 끌려갔다. 이것이 현실인가. 꿈이었으면 좋겠다. 정문 앞 바리케이드 앞에 쳐진 시커먼 차광막에 가려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남편 있는 공장 쪽을 향해 안타깝게 손 흔드는 연두색 셔츠 입은 가족대책위 쪽 사람들은 더 그럴 것이다. 공장 쪽을 향해 회사 쪽의 선무방송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당신들을 쌍용은 온몸으로 거부한다, 언론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협상이 마치 성사된 것처럼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고개 빳빳이 들고 협상 테이블에 나온 당신들, 우리가 노조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그런 쌍용차가 아니다, 타결이라도 될 줄 알았냐, 선택권은 당신들에게 없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는 당신들은 협상에 희망을 걸었나 본데 안됐지만 희망은 없다… 그러니까 굽실거렸어야 하는 거였다. 농성자들이 파업해서 미안하다고 빌었어야 하는 거였다. 파업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대화를 안 하려면 다 죽이라는 각오로 한 파업에도 협상 테이블에서 당당하지 말고 굽실굽실 죄송하라는 거였다. 그렇지만 뭐가 죄송해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거기 지옥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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