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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16 22:03 수정 : 2009.08.16 22:03

박수정 르포작가

꿈을 꿨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연 집회 자리, 철거한 공장이 그대로다. 집회가 끝나 모두 흩어지고 기륭 노동자들만 남았다. 생각해 보니 그이들이 있는 곳에 통 발걸음을 못 했다. 가끔씩 다른 곳에서 보면 비정규직 차별 철폐, 햇빛에 바랜 천이 조끼에 달렸다. 마음이 빚진 사람이 된 탓인가, 꿈을 꾼 게.

언제부턴가 날짜를 더듬다 깜짝 놀란다. 5월엔, 아 기륭 사람들이 서울광장에서 고공농성을 했지, 투쟁 1000일 문화제를 했지…. 365일을 더 한다는 게 안 믿겼다. 6월엔, 구로역 광장에서 고공농성을 했는데, 집단 단식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한 해 전 오늘을 떠올리면 이 노동자들이 관련하지 않은 날이 없다. 7, 8월도 마찬가지다. 이맘때쯤엔 경비실 옥상 위 뙤약볕에 두 노동자가 두 달 넘게 곡기를 끊었다. 시민·문화예술인·종교인·변호사·교수를 비롯해 인권·사회·노동단체들이 연대한 일도 그날들에 있다. 아마 9월을 지나 10월로 가면 용역·구사대 폭력, 경찰력·특공대 투입과 연행을 떠올릴 거다. ‘용산’과 ‘쌍용’에서 그대로 반복된 일들을 보면서 기륭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속상했다.

94일을 단식해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두드린 금속노조 기륭분회장 김소연씨는 “그때가 꿈같다. 진짜 그런 일이 있었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 줘서” 그 시간을 지나왔다고 한다. 이들이 다시 일하길 많은 사람들이 바랐지만, “기륭이 직접 책임진다”고 보장하면 되는 걸 회사는 거부했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불법 파견을 시정하여 직접 고용하고, 용역깡패 등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노조를 탄압하지 말라”고 한 권고도 듣지 않았다.

노조를 만들고 해고되고 싸운 지 꽉 차고 넘은 4년. 기륭 노동자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아침이면 회사가 옮겨 간 곳에서 출근투쟁을 하고,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밤이면 옛 공장 앞 컨테이너박스에 깃든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 없는 개발’은 안 된다고 말한다. 둘씩 짝지어 돌아가며 밤을 나다 보니 차례가 금방 돌아와 이젠 한 사람씩 지킨다. 공단 안 철거된 공장 앞 깊은 밤을 이겨내는 사람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에 남은 공장과 그이들이 남은 정문 앞은 그냥 장소가 아니다. 아무 권리 없이 일하다 아무 때나 해고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두려움과 눈물로, “불법파견노동을 금지하고 마구잡이 해고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노조를 만든 곳이다. 불법파견 판정에 회사가 시정 대신 그 소망을 꺾고 여성 노동자 200여명을 해고한 곳이다. 긴 싸움, 어쩔 수 없이 그만둔 노동자들을 기다린 건 ‘6개월 이하 단기고용, 일당제 노동, 실직 상태’였다. 남은 이들은, “해도 안 되는 거 아닌가, 희망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들 가슴엔 노조를 만들면서 함께한 노동자들이 꾼 작은 꿈이 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삶을 알기에 “동일한 삶을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올해 국제노동기구 총회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 개막식에서 김소연씨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과 한승수 국무총리를 마주보았다. 총회가 권고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 대표자들이다. 몸 벽보에 영어로 쓴 ‘비정규’ 노동자. 사전에선 ‘불안정 불확실한 위험한 위태로운 남의 의지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이라고 말한다. 집보다 농성장에서 더 잘 자는 세연이는 태어난 지 6개월, 기륭 노동자 딸이다. 단식하던 엄마가 쓰러져 존재를 알게 된 아이다. 아이가 저 말을 등에 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기대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리라.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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