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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1 21:26 수정 : 2009.11.01 21:26

김현진 에세이스트

처지와 의지를 의도적으로 혼동하는 건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효과적인 방법이다. 가령 내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치 그 처지가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지난 몇 달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면서 도로 월급쟁이가 되어 보고자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아서 멈추고 월급쟁이가 되지 않아도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생활양식을 뜯어고친 다음, 스스로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비자발적 실업자가 아니라 자발적 실업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 척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생활이 아니라 생존만 하면 된다. 거기에다 자취방을 빼는 바람에 철거민도 아니고 이젠 무주소자가 되었지만 ‘무소유’라는 식으로 애써 좋게 생각해 버린다. 나름 어지간한 상황이 아닌 한 쓰지 않는 극단의 조처지만, 이런 방법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처지와 내 의지를 의도적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 일단 견디기 위해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철저히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뽀샵질’인지를.

작년 이맘때 아직 철거민이었을 적 이삿짐 트럭에 짐을 실어 다른 철거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정든 골목을 돌아보며 자꾸만 애잔했던 건 그 넓지도 않은 골목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놀던 아이들이 밟혀서였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준다’는 브랜드 아파트들과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그곳의 쪽방들은 지금 다 뜯겨져 나갔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해도 다 안 뜬 이른 아침부터 가로등 불빛이 골목에 훤할 때까지 하루 종일 놀던 아이들이 그 쪽방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아파트 아이들은 여기저기 실려 다니면서 공부하느라 바빠서 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아파트 놀이터는 아침이고 밤이고 텅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일하러 나간 집 아이들은 하루 종일 노는 수밖에 없었다. 노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없었던 아이들, 비어 있는 아파트 놀이터는 못 가고 몇 걸음 가면 그만인 그 좁다란 골목에서 뛰어다니고 노래를 부르던 그 아이들, 그 골목이 아예 없어져서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아이들의 처지와 의지를 생각하면 끝없이 서글퍼진다. 용산 농성자들에게 전원 중형을 구형한 이 나라는 자신들이 인정해 주고 싶지 않은 이른바 ‘비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네 처지는 네 의지의 결과”라고. 네가 지금 그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살던 집도 놀던 골목도 철거되어 지금 여기저기 흩어졌을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 노골적인 메시지를 혹시 그대로 어딘가에 각인한 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어거지 쓰지 말라’는 싸늘한 말을 보면서 체념부터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건 다 나 때문이라고. 우리가 자꾸 이사를 다녀야 하는 건 다 우리 때문이라고. 이사를 나가면서 엄마 아빠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지만 그건 다 우리 때문이라고. 2009년의 한국 법정이 용산 철거민들에게 내린 선고를 보며, 그 외에도 힘없는 ‘비국민’을 국가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며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자라나게 될까. 지금 용산을 위해 더 싸워야 하는 건 ‘처지’와 ‘의지’를 의도적으로 혼동할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는 어떤 아이도 ‘지금 네 처지가 네 의지다’라는 이 메시지를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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