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25 21:07
수정 : 2009.11.25 21:07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
세종시 논란을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한 분 계시다. 2005년 2월은 내가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던 세 분이 약속이나 한 듯 며칠 사이로 차례로 돌아가신 비극적인 달이었다. 한국의 생태 사상을 이끌어나가시던 문순홍 박사,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경제학자였던 정운영 선생 그리고 당시 환경운동연합 대표였던 임길진 교수까지, 며칠 동안 그렇게 문상을 계속 간 적이 있다. 임길진 교수는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한동안 환경 문제와 도시생태 문제에 관해서 논쟁도 하고, 상의도 하던 그런 관계였다.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의 환경단체 농성장에서 마지막 뵈었는데, 소주나 한잔하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을 내가 춥다고 야멸치게 뿌리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며칠 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내내 소주 한잔 못 받아드린 게 마음에 걸린다.
당시 나는 임길진 교수와 같이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고 있었는데, 똑같이 환경이라는 문제를 걸고 있었지만, 정치적 입장은 서로 달랐다. 당시 나는 행정수도 반대 글을 몇 번 썼는데, 민주당 계열의 지인들에게 “왜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느냐”고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다. 내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행정수도 이전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지 않을 것일뿐더러, 오히려 집중을 강화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전된 청사나 공기업 터를 공원으로 바꾸면 분명히 집중도는 줄어들게 되지만, 당시의 정부안은 그렇게 하지 않고 민간 매각으로 되어 있었다. 시내와 요지에 있던 청사가 민간에 팔리면 분명히 고층의 주상복합으로 바뀌게 되고, 더욱 많은 사람이 서울로 들어와서 살게 된다. 공원 조성 대신 아파트 개발로 가면 문제는 전혀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한전 같은 공기업은 아예 한전법을 바꾸어서 직접 아파트를 건설해서 파는 방법을 모색하는 상황이니, 서울 집중은 행정수도 이전으로 더 강화될 것이 뻔하다.
그 대신 나는 서울을 파리처럼 아주 좁게 재설정하고, 지금 서울시민들이 제대로 내지 않는 물세와 전기세 등 자원의 지방 착취에 대해 생태세를 도입해서 ‘서울의 삶’을 비싸게 만들고, 이걸 농지를 보존하고 생태계를 보존하는 지자체에 지원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런 논의를 하다가 임길진 교수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그와 한번 해보고 싶었던 토론회는 한 번 열어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4대강이 토건이면, 새만금도 토건이고, 대운하가 토건이면, 경인운하도 토건이다. 큰 토건과 작은 토건의 싸움, 힘있는 토건과 힘없는 토건의 싸움, 미안하지만 이게 내가 지금의 한나라당과 민주당, 충청도 게다가 서울대까지 끼여 있는 이 ‘살벌한’ 논쟁을 보는 눈이다. 큰 토건이 나쁘다면 작은 토건은 좋은가? 한나라당은 충청도를 포기하고 그 대신 공무원의 마음을 사서, 그걸로 통치도 하고 재집권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공무원은 포기하고 충청도 민심을 얻기로 작정한 듯하다. 좋다. 정치인들의 선택이니 말이다. 여기에 정치는 많고 담론은 많지만, 생태는 없고, 토건은 있다. 기왕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과정에 농지를 다시 농지로 돌리고 그 대신 충청도의 발전을 위한, 토건이 아닌 다른 대안을 제안하는 시나리오를 한 번만이라도 검토해주면 고맙겠다. 새로운 10년대, 그 벽두부터 토건 논쟁으로 시작하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큰 토건과 작은 토건의 싸움 대신 충청도에 생태경제학적 대안은 없는가? 서울 집중 해체에 탈토건의 대안은 없는가? 토건으로 흥한 자, 토건으로 망할 것이다.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