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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03 19:28 수정 : 2010.01.03 19:28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 2010년이야말로 한국에서 이 말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에서부터 환경에 이르기까지 위기가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에 우리가 올바르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지역적으로도 지구적으로도 제대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새해에는 연달아 열린다.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또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먼저 지방자치를 보자. 서울시의 지난 1년간 ‘행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쇼로 시작해서 쇼로 끝났다. 드라마 <아이리스>를 찍는다고 광화문 네거리를 봉쇄한 것에서부터 스노우잼 행사에 이르기까지 광화문에서는 1년 내내 요란뻑적지근한 스펙터클 쇼가 벌어졌다. 스스로가 무슨 연예기획사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여기에 시민들의 자리는 없다. 서울시민들은 그 쇼에 단지 시민 ‘고객’ 혹은 구경꾼으로만 초대될 뿐이다. 이 ‘광장’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학예회’는 들어설 여지도 없다. 학예회와 운동회 같은 동네잔치가 없는 마을이 무슨 삶의 터전인가. 그건 그냥 거대하고 조잡한 놀이동산에 불과하다. 쇼가 거버넌스를 대체한 것이다.

G20을 보자. 이명박 정부는 G20을 ‘성공적인’ 쇼로 만들기 위해서 이미 국민들에 대한 단속과 엄포를 시작했다. 이 정부 들어서는 단군 이래 최대가 참으로 많다. 대운하 사업도 단군 이래 최대의 치수사업이라고 선전하더니 얼마 전 중동 원전 수주도 단군 이래 최대라고 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단군 이래 세계가 얼마나 통합되고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어찌되었건 G20도 단군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다. 최초로 선진국 바깥에서 개최하고 의장국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의미가 지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온 국민이 합심하여 이 행사를 잘 치러 국운융성의 기회로 삼자고 한다. 그래서 불법파업은 안 되고 거리시위도 안 된다고 한다.

시민들이 통치기구의 정당성을 묻고 거기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G20은 지구 거버넌스 체제에서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초법적이고 임의적인 일종의 ‘월권조직’이다. 이 월권조직이 무슨 권한으로 전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지를 묻는 것은 주권자의 권한이자 의무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 주권자들에게 ‘손님’들을 향해 놀이동산 퍼레이드하듯 두 손을 흔들며 미소만 지으란다. 이것이야말로 G20을 거버넌스의 문제가 아닌 쇼로 생각한다는 방증이 아닌가? 여기에 이르면 구경꾼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모두는 정부가 주연하는 쇼의 엑스트라가 되어야 한다. 그게 애국하는 시민의 역할이다.

쇼가 정치가 되고 정치가 쇼가 되었다. 삶의 터전은 놀이동산이 되고 시민은 고객과 엑스트라가 되었다. 우리는 다시 지역적이고도 지구적인 시민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주민들이 모여 삶을 토론하는 정치적 공간, 아고라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아고라는 당연히 혼란스럽다. 아고라에서 펼쳐지는 것은 스펙터클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라 난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선거와 G20은 단지 거버넌스의 정치적인 정당성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감수성도 실험한다. 우리에게 ‘매끈한’ 호화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라 이런 무질서와 혼란을 즐기는 감수성이 있는지도 묻기 때문이다. 이것이 2010년 새해에 ‘지역적이면서도 지구적으로’ 우리가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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