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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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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는 것으로 학교뿐만이 아니라 엄마와도 늘 싸워야 했다. 엄마는 몸이 좋지 않다고 할 때마다 조금 더 견뎌보라고 하거나 아니면 정 견디지 못하겠으면 전화를 하라고 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면 아이를 잘 이해하고 많이 배려해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는 자신이 조퇴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전화를 할 때는 이미 그때는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것인데도 엄마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며 서러움에 펑펑 울었다. 몸만 다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다쳐왔던 것이다.
엄마는 그때야 깨달았다. 아이의 말을 진정으로 듣지 않은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들의 말을 흘려듣는다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도 이런데 학교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학교는 아이들을 믿지 않는다. 몸이 아프다고 하면 꾀병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아직 보건교사가 없어 해열제나 두통약을 주고는 그냥 책상에 엎어져서 자라고 한단다. 그래서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야 한단다. 아이의 건강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대놓고 학교가 학생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고3이 보충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바로 교사가 불러 ‘대입포기각서’를 쓰라고 윽박지른다고 한다. 앞으로 학교는 너를 포기하고 자유를 줄 테니 대신 대입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보충수업에 빠지면 자기 반 학생 취급을 안 하겠다고 막말을 하기도 한다. ‘네가 알아서 공부하겠다고 하니 마음대로 하라’며 ‘하지만 학교장 추천서는 절대 못 써준다’는 학교도 있다. 조금씩 사정은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과 관련해서 온갖 위협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알몸 졸업식을 보면서 어른들은 학생들의 문화가 조폭이 되고 있다고 난리지만 알고 보면 학교 전체가 조폭 문화의 덫에 걸린 셈이다.
이건 ‘대입포기각서’가 아니라 학교의 ‘학생포기각서’이다. 학교가 대놓고 학생을 관리하고 돌보는 것을 포기하고 내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학교에서 다수의 아이들은 이미 내쳐진 상태이다. 학년말에 교문 펼침막에 이름이 걸릴 아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들은 교실의 들러리가 된 지 오래다. 대학 갈 아이들 방해하지 말고 차라리 잠이나 자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여기에 ‘대입포기각서’라는 말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내 이웃의 아이도 별다른 것 없는 평범한 아이이고 그 엄마도 고만고만한 보통의 부모이며 학교도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의 학교이다. 그러나 보통인 부모와 학교는 죄를 짓고, 보통인 학생은 내쳐진다. 특출하지 않고 보통인 것이 죄악인 사회, 이것이 대한민국이다.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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