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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02 21:39 수정 : 2010.05.02 21:39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서울광장을 지나는데 분향소의 영정사진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불쑥 눈물이 흐르고 먹먹해졌다. 딱히 어떤 느낌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덮쳤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주룩 흘러나온 눈물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만으로 애도는 완성되지 않는다. 애도는 죽은 자들의 자리를 헤아려가는 과정이다. 그들이 왜 또는 어떻게 군인이 되었는지, 천안함에 올라탔는지, 그리고 침몰했는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기억할 것인지.

사고의 원인을 찾는 것만으로 부족하지만 그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고의 원인을 찾아가는 노력들에 ‘괴담’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자들이 있다. 괴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신문들에 따르면, 좌초설은 괴담이고 기뢰설은 괴담이 아니다. 미군 개입설은 괴담이고 북한 연루설은 괴담이 아니다. ‘괴담’은 특정한 주장에 대한 낙인일 뿐인데 검찰과 경찰은 ‘검증되지 않은’, ‘근거 없는’ 말들을 엄중히 수사해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금은 확인된 근거들을 바탕으로 사고의 원인을 검증해가는 과정이다. ‘검증되지 않은’, ‘근거 없는’ 말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고 분석을 검증할 만한 정보나 근거를 내놓지 않는 정부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미 공개된 정보로도 검증되기 어려운, 그래서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공식 입장만 발표하고 있다. 그것은 유일하게 허용된 ‘표현’이며, 알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에 하나의 길만 허용하고 있다. 우리는 사고의 원인을 밝혀나갈 기회를 놓치고 있고 그만큼 애도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 위한 행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가 공격당하는 대가다.

며칠 전 ‘2010 한국 표현의 자유 보고대회’가 열렸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인 프랭크 라 뤼의 방한을 앞두고 민간단체들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를 읽다 보면 몇 가지 경향이 두드러진다. 우선 ‘명예훼손’이 부쩍 늘었다. 전국민이 알 만한 것만도 ‘피디수첩’, ‘미네르바’ 등 넘쳐난다.

둘째, 인터넷의 상시적 계엄 대기 상태다. 글이라도 쓸라치면 주민등록증을 까야 하는 불심검문(인터넷 실명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판단만으로 격리구금(삭제)되는 게시물들, 인터넷을 잠재적 범죄장소로 보며 미행(통신자료요청, 감청)하는 수사기관. 셋째, 생존권을 요구하는 집회에 과도하게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다. 재작년 촛불집회나 작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 진압을 광주민중항쟁 당시 군인들의 모습에 비추어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과거’에 살고 있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독재정권 시대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일구어낸 한국의 역사는 국제사회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데, 표현의 자유를 향해 온 역사가 이렇게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니! 표현의 자유 침해는 언제나 권력에 저항하는 세력을 겨냥한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권력을 향하는 것만이 표현의 자유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만 봐도 분명하다. 그때 자유는, 자유를 목놓아 외치며 정권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가장 철저하게 자유를 빼앗겼고, 그들의 빼앗김으로부터 우리는 자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권리가 없는 자리에서 권리가 태어난다. 그렇게 자라난 인권에 대한 열망이 독재정권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었다.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내고 있는 세력이 가로막는 것은 정부 비판 세력의 목소리만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 사회를 미래로 이끄는 힘을 차압하고 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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