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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28 23:36 수정 : 2010.06.28 23:36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대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온전히 자기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금쪽같은 두 달의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은 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누군가는 여행계획에 들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중압감에 잠 못 이룰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오늘 최종의결할 최저임금제의 운명에 가슴을 졸인다. 지켜지지 않을 최저임금제라는 것을 알기에 고작 10원이 오르든 꿈(?)의 금액인 1000원이 오르든 노동하는 대학생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정당한 요구의 실현과 그러한 경험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힘은 노동자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임금투쟁은 기이하게도 그들의 본분을 이행할 기본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턱없이 높은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방학 기간에도 다음 학기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실제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중 22.2%가 주업이나 부업으로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5시간25분으로 우리나라 대학생 평균 학습시간인 3시간47분보다 훨씬 많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의 결과에 있다. 자기 노동을 통해 대학 등록금 정도는 마련하는 것이 가난한 대학생이 바라는 삶의 ‘이치’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학비 마련 실패로 인한 대학생의 휴학은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66%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현실을 떠올릴 때, 대학생들의 학비 마련은 꿈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높은 대학 등록금과 ‘지나치게’ 낮은 최저임금은 우리가 바라는 삶의 ‘이치’를 질식시킨다.

노동이란 개인의 시간을 조직하고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개인적 활동인 동시에 사회의 시간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윌리엄 모리스는 훌륭한 노동의 필수조건을 ‘희망’이라 했다. 노동을 통해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그 희망을 통해 노동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의 기본 조건이라는 말이다. 진정한 노동은 희망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학생들은 그들의 주업인 공부보다 노동에 시달리는 기이한 자본주의의 먹이사슬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노동은 희망을 담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절망에 직면케 한다.

물론 더 큰 문제는 대학생 바깥에 있다. ‘김예슬 선언’ 대자보가 떼어지고 없어진 자리에 대학조차 다닐 수 없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자보가 붙었다. 그의 삶 또한 노동이 자신의 희망을 전혀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청년 세대에서 비교적 기득권층에 속한 대학생의 절망이 이 정도라면, 대학생이 아닌 청년 노동자들의 절망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더 주시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기층 노동자들은 노동이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정말로 희망 없는 절망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노동이란 정직한 노력과 시간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개인이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 노동하는 것, 그리고 그 노동을 통해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윤리’이다. 언제까지 최저임금제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단순한 임금투쟁으로 바라볼 것인가. 이것은 건강하고 정당한 개인과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절망 속에 빠진 인간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존재의 투쟁이다.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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