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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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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른 장면을 떠올려 본다. 2005년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카트리나 재난 당시 의료 지원이 시급했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대기중이던 600여명의 쿠바 의사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절당했다. 국가 간의 적대관계로 인해 쿠바 의사들은 의료 현장에 가지도 못했고, 재해를 당한 수많은 미국 국민들은 좀더 신속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고통에서 허덕여야 했다. 무엇보다 뼈아픈 사실은 미국이 거부한 것이 쿠바 의사들의 보편적 인류애였다는 점이다.
필자가 팀장을 맡고 있는 ‘2010 인디고 유스 북페어’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페어에 초청하려 했던 쿠바의 청년 의사들의 출국이 거부된 것이다. 지난 12일,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가 남한과 북한이 천안함 사태로 인해 극도의 긴장 속에 있으며, 미국의 지휘 아래 곧 전쟁이 터질 것이라고 쿠바 국영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발표한 이후, 쿠바 당국은 한국을 위험 국가로 지적하며 자국민의 출국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 청년 의사들은 국제적 정치상황을 악화시킬 위험인물들이 아니다. 의술로 전세계의 가장 약하고 소외된 생명을 구하는 인류애를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북페어에서 토론하고자 했던 주제는 정의롭지 못한 이 세계에서 어떻게 공동선을 향한 연대를 모색할 것인가였다.
이 세 가지의 장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싸워야 하는 현실의 장벽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월드컵에서 축구 선수들이 전했던 짧은 구호와 같이, 이 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보편적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들이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채 늘 이상으로만 남게 되는 원인의 실체는 다름 아닌 국가라는 장벽인 것이다. 고통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구해내고자 하는 공동선의 보편적 확장과 연대가 국가의 장벽 앞에서는 한낱 순진한 꿈과 이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현실을 우리는 자주 직면한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민간인 불법 사찰 등은 개개인의 선량한 의지를 무참히 짓밟는 국가적 악행의 대표적인 사례다.
쿠바에서 직접 만났던 청년 의사들은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신들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유를 존중하고 행복을 증진할 뿐만 아니라 미덕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어떠한 미덕도 함양하지 못한 권력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으며, 모두에게 옳고도 이로울 수 있는 가치들을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축구 선수들이 인종주의의 철폐와 같은 공동선의 가치를 전세계를 향해 던졌다. 우리 청년들은 이제 그것이 이상으로만 남지 않도록 현실의 부조리한 권력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과연 공동선을 향한 순수한 의지는 언제쯤 현실로 입국할 수 있을 것인가.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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