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04 18:45
수정 : 2010.08.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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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2.1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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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지난 지 이제 10년이다. 두번에 걸친 세계적인 전쟁과 냉전의 시기가 한 특징이었다. 그래서인지 리얼리즘과 함께 잔혹함 그리고 그 빈 공간에서 펼쳐진 히피운동과 여성의 경제주체로서의 등장, 그런 것들이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약간은 설렘을 가졌던 것 같다. 자, 한국은?
어럽쇼!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민주주의, 토건, 승자독식, 그런 키워드들을 제치고 사교육이 떠오른다. 21세기를 맞으면서 한국이 가야 할 길로, 더이상 대학원이나 박사 공부를 위해서 유학 가지 않아도 좋은 사회를 소망하였다. 간절했다. 일본이 전후 망가진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선택했던 ‘자국에서 공부하기’를 우리도 선택할 수 있기를 21세기를 맞으면서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21세기를 맞아 새롭게 대학원생 후배들과 스터디팀을 꾸려 철학 공부, 생태학 공부, 수학 공부, 그런 걸 같이 했고, 박사도 많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이제 한국은 초등학생도 유학 가는 나라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자식 조기유학 시킨 사람들은 고위 공직자가 되면 곤란하고 선출직 혹은 최소한 국립대학 교수 같은 것을 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런 부모들이 정책을 맡고 사회의 주요 의사결정을 해서 우리가 생존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새 정부 들어와서 고위직 자제분들의 조기유학은 더 늘어난 것 같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의 사교육이 너무 싫어서… 아니, 그게 싫으면 사교육을 없앨 방도를 찾아야지, 그냥 개인적 해법으로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면, 그게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기왕 연구를 시작한 김에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해서, 그렇게 조기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과연 어디로 가는지도 좀 알아보았다. 나는 무슨 대단한 귀족학교나 그런 명문학교 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한국의 공교육과 사교육이 싫다고 외국으로 떠난 학생들은 대부분 외국의 평범한 공교육에 속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사교육과 영어, 두 가지가 한국을 밑바닥부터 붕괴시키는 중인데, 지도층 인사들이 먼저 그 짓을 선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한국의 ‘건전 보수’, 성찰이 조금 필요한 것 같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외치던 사람들이 한국 보수의 정신적 기원일 텐데, 자신의 자녀부터 한국으로 데리고 오고 출세길을 찾을지어다!
대학, 사교육, 공교육, 이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이 ‘죽음의 삼각 편대’ 앞에서는 노무현 정부든 이명박 정부든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창의성도 학원에서 배운다고 해서 크게 한번 웃었는데, 요즘 사교육 키워드가 ‘자기주도형 학습’인 걸 보고 진짜 이 나라는 망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답답함의 한가운데에서 얼마 전부터 작은 시민단체에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문패달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래, 부모들부터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 이건 답이 없지 않은가? 사교육의 대안은, 사교육이 자녀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것을 부모가 자각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21세기가 원하는 창조적 인재, 그것은 사교육 없는 세상에서 나온다. 이제야 새로운 10년이 시작한다. 이제 시작하는 10년, 우리는 유학 없는 세상, 사교육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일단, 문패부터 답시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www.noworry.or.kr/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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