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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20 20:29 수정 : 2010.12.20 20:29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초등학교 시절, 사이렌 소리가 나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라디오 방송이 나오던 날이 있었다. 민방위 훈련. 방송이 나오는 동안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실감은 할 수 없었지만, 그 소리들이 왠지 모르게 무서웠던 것 같다. 중학교 이후론 아예 기억이 없다. 이 나라에는 전쟁이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신경도 쓰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민방위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여전히 전쟁중에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생각하니 새삼 놀라울 뿐이다.

반공 훈련이 아니라 북한과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배운 세대들에게 지난주에 실시한 대대적인 민방위 훈련과 같은 ‘준전시 상황’은 당황스럽다. 올림픽 동시 입장,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남북평화회담 등 평화와 화합의 남북관계를 더 많이 경험했고, 그것들이 바람직하다 배웠다. 그런데 온 거리를 정적과 사이렌 소리로만 가득 채운 채 유사시 상황을 대비하라는 명령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뭇 진지한 표정들로 지하철 스피커 주위로 몰려드는 어르신분들과 이 상황이 불편하기만 한 젊은이들의 얼굴이 확연히 대조되었다.

민방위 훈련은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채 ‘휴전’ 상황인 한반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일 수 있다. 특히 이번 특별 훈련은 연평도 사태와 같은 정세에 비추어 본다면 정당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방위 훈련이 끝나고 국민들이 느낀 것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을 숙지했다는 안도감보다, 훈련을 필요로 할 만큼 위험 상황에 있다는 공포감에 있다. 책상 밑으로 들어가게 한다든지 운동장 스탠드에 집합하는 훈련이 전시 상황에 안전을 위한 방법으로 적합할 리 만무하다. 민방위 훈련을 실시한 이유가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만약 훈련대로 한다면 전쟁이 났을 때 국민 모두는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에게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면, 그 의무에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민방위 훈련을 통해 조성하는 전쟁의 공포감에 대해서 국민 대다수가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전면전으로 확산되어야 할 필연적인 논리와 이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나는 전쟁이 두렵다. 그리고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살아온 생애 가운데, 전쟁의 위협이 이렇게 심각하게 자주 다가온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정부는 위험 관리에 실패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 원인이 외부에 있건 내부에 있건 어쨌든 국가의 위험을 관리해야 할 주체는 정부다. 전쟁은 두려운 일이다. 효과 없는 민방위 훈련을 대대적으로 치르는 것보다, 전쟁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전방위적 노력을 더 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진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국민들이 동의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민방위 훈련 풍경을 바라보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이 나라가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민방위 훈련이 전면전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고도의 심리적 훈련은 아니겠지, 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그렇지만 민방위 훈련 사이렌을 실전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질려 들어야 하는 지금, 그 소리를 귓등으로 들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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