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27 21:08
수정 : 2010.12.2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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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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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29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는 곧 현 정권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3일에도 그는 전방부대를 시찰하며 비슷한 발언을 했다. “기다리기만 하면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이 결국 오산으로 드러났음을 실토한 셈이다.
대북정책이 파탄났으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념적 이유에서 햇볕정책을 ‘실패’로 낙인찍어 놓은 이상, 슬그머니 그리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했으나, 그 기다림은 우라늄 농축과 연평도 포격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기다리지 말고 행동해야 하는데, 딱히 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 그래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 육해공 3차원의 무력시위. 문제는, 북한이 그런 것에 겁을 먹고 우리 요구에 고분고분 응할 것 같지는 않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지금 벌이는 무력시위에는 전략적 목표가 없다. 그것은 ‘군 면제 정권의 안보 무능’이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드는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 군사력의 우위를 과시함으로써 북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돈을 처들여서라도 가공할 화력시범을 연출하는 게 의미 있을 게다. 문제는 북한이 자신들의 군사적 열세를 모르지 않는다는 것. 그 열세를 일거에 만회하려고 핵을 개발한 게 아니겠는가? 우리가 화력의 우위를 과시할수록, 북한은 더욱더 핵에 목을 매게 된다.
게다가 국민의 혈세로 ‘사상 최대’라는 화력시범을 매일 연출할 수는 없잖은가. 일련의 무력시위가 끝나면 결국 남는 것은 또다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인 상황일 것이다. 아, 화력시범을 일상화하는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듣자 하니 “대규모 화력시범 훈련이 일반인에게 개방돼 안보관광 자원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안보의 외설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매스게임으로 달러를 번다면, 남한은 화력시범으로 국방비를 번다. 남이나 북이나 코리아는 ‘변태’가 될 모양이다.
화력시범은 목표를 상실한 정권의 절망적 제스처다. 이 절망 속에서도 한 가닥 구원의 빛이 있으니, 그것은 세속적 종말론, 즉 북한이 붕괴하리라는 믿음이다. 북한이 저절로 망한다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잖은가? 얼마 전 위키리크스를 통해 “북한이 김정일 사후 2~3년 후에 붕괴할 것”이라는 청와대 인사의 발언이 공개됐다. 대통령 역시 얼마 전 뜬금없이 “통일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보수언론들은 북한 붕괴의 조짐을 보도하느라 여념이 없다.
문제는 북한 붕괴론이 현재로서는 한갓 추측, 가정,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말론은 신도들의 등을 치기 마련이다. 종말이 온다 해서 온 재산을 바쳤는데, 약속된 시간에 세상이 멀쩡히 돌아간다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이명박 장로의 ‘다미선교회’라고 다를까? 무기 구입에 혈세를 내고, 민방위 사이렌에 거리에서 떨고, 훈련 때마다 피난을 떠나고, 젊은이들 복무기간 늘어나고, 안보교육 부활에 인터넷에 긴급조치. 그런데 이 모든 희생에도 종말이 안 온다면?
황당한 것은, 정권의 안보 실패가 국민의 어깨 위에 그대로 경제적, 정치적, 신체적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군 면제 정권이 보온병 들고 국민 앞에 안보를 설교하는 것은 희극이지만, ‘국론통일’로 졸지에 운명공동체가 된 대한민국호가 종말론의 바다를 표류하는 것은 비극이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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