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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03 18:23 수정 : 2011.01.04 10:02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얼마 전 <한겨레21> OTL 시리즈 중 빈곤과 죽음의 관계를 다룬 ‘생명 OTL’ 기사를 접하고서, 우리나라에도 이제 건강 불평등의 문제가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전세계적으로 건강과 불평등의 관계가 조명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건강한 삶을 뜻하는 ‘웰빙’이 까다롭게 영양소를 따지며 고가의 식품을 챙겨 먹는 삶의 기술처럼 서술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건강이란 ‘질병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이란 광의적인 의미로 현재 질병이 없는 상태는 물론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과연 이 세계에서 건강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열악한 환경이나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야 하는 빈곤한 사람들은 언제나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위생시설이 거의 없거나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크고, 종사하는 직종의 업무 자체가 인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도구 또는 물질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의 경우, 쓰레기를 처리하는 직업상 씻을 수 있는 시설이 가장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각종 질병에 걸려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또한 불평등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함으로써 건강 가능성을 저하시킨다. 이 경우 질병에 노출되는 것보다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갖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돈의 여부에 따라 인간의 생명을 저울질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강과 불평등의 관계는 질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환경과 상황,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의 박탈로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불쌍하게도’ 질병에 많이 걸린다는 통계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질병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는 것뿐만 아니라, 평등하다면 발생하지 않아도 되는 질병이라는 점, 곧 건강이 불평등으로 인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문제시해야 한다.

또한 사회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의 변화와 동시에 건강이 보편적인 권리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건강 불평등은 단순히 소득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소득이 미국보다 낮아도 사망률이나 질병률이 낮은 쿠바의 사례는 평등이 건강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정책을 통해 건강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 특정한 사회적 약자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사회적 함의가 필요한 것이다.

불평등은 건강을 불가능하게 한다. 질병의 원인과 치유의 과정은 생물학적인 요인에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원인의 제공과 치유의 과정에는 사회적인 요인들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불평등이 항상 질병을 만들지는 않지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아이티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며 권력의 불평등이 질병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한 의사 폴 파머가 자신의 저서 <권력의 병리학>에서 말했듯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질병이 먼저 찾아오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즉,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하여 건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호혜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인 것이다.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어 몸을 차가운 강물에 던진 뉴스로 시작한 2011년 새해. 몸과 마음 모두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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