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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2 20:59 수정 : 2011.01.12 20:59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이명박 반대 말고는 아무런 내용도 비전도 없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자신들이 정권 교체의 유일한 대안이라 으름장을 놓고 진보 정치 한다는 사람들은 그 줄을 서는 걸 ‘진보연대’ ‘진보집권’이라 말하는 참으로 충충한 시절. 그 풍경을 바라보다 불현듯 저들에게 대의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각성된 시민들이 직접 행동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겨울이 가기 전에 사회에 내놓는 걸 목표로 제안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름이 ‘좌파시민행동’이다.

가칭임에도 ‘좌파’라는 말이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 빼자는 의견이 많다. 알다시피 그 거부감은 극우독재 시절 빨갱이 사냥의 공포에서 온다. 극우독재가 물러간 지 30여년, 말하자면 그 공포는 우리 마음에 남은 독재다. 마음의 독재는 우리뿐 아니라 우리를 빨갱이로 몰아대던 사람들에게도 함께 남아 작동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좌파’라는 말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극우세력의 상용어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례는 더 있다. 한국에선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이라는 말을 상용하는데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다들 ‘인민’(영어로 ‘피플’)을 상용한다. 국민이란 ‘국가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그 상용만으로 국가주의적인 정서가 내면화한다. 국가 안에서의 이해관계는 상충되는 경우가 많음에도(이를테면 정몽구의 이익과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의 이익은 전혀 상충된다) ‘국익’이니 ‘국가경제’니 따위 말도 안 되는 선동이 통하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이미 우리는 인민이라는 말을 얼마든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의 독재가 우리를 막아설 뿐이다. ‘괜찮을까?’

그리고 ‘동무’. 지금 우리는 친구라는 말을 상용하지만 옛날엔 대개 동무였다. 동무는 친구보다 훨씬 정겨운 말이고 어깨동무라는 말이 있듯 아이들에겐 동무가 친구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말이다. <고래가 그랬어>는 2003년 창간 때 이 문제를 놓고 숙고를 거듭했다. 결국 <고래가 그랬어>의 주인은 아이들이니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당하게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독자들은 예상보다 쉽게 익숙해졌다. 이따금 새로운 독자 부모들이 조심스레 문의해오면 ‘괜찮습니다’ 하며 같이 웃는 게 전부다.

‘좌파’ ‘인민’ ‘동무’는 제정신을 가진 모든 나라에서 상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들을 빼앗겼고 되찾기 위해 반세기의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치렀다. 그렇게 되찾은 소중한 우리의 말을 우리는 여전히 남의 말인 양 꺼리고 우리에게서 그 말을 빼앗아갔던 저들은 도리어 본디 저희 말인 양 마음껏 상용하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좌파’ ‘인민’ ‘동무’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벽이나 책상 위의 달력에 5월1일이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라. 떡하니 ‘근로자의 날’이라 적혀 있다. 근로자는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박정희 정권이 노동자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지어낸 말이다.

마음의 독재를 몰아내자. 우리의 말을 우리의 말로 만들자. 저들이 좌파라고 몰아대면 ‘나 좌파인데 좌파가 어때서?’ ‘난 좌파는 아니지만 좌파가 어때서?’라고 받아치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부자와 권력자가 아니라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인민입니다’ ‘아이들이 공부에 짓눌리지 않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노는 세상을 만듭시다’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어색한가? 우리의 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게? 그러니 상용하고 또 상용하자. 진보적인 사람들부터 진보적 언론부터 앞장서야 하는 거야 두말할 것 없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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