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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9 19:45 수정 : 2011.01.20 11:33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이상 한파가 모든 것을 얼려놓은 듯한 요즘, 난데없이 재벌 3세 논의가 완전 뜨겁다. 시청률 35%로 마감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때문인가? 매너 좋고 잘생긴 완전 소중한 남자, ‘완소남’에서 차가운 도시 남자, ‘차도남’으로 남성 코드가 변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싸가지’ 없어도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남자, 카, 그게 현빈이다. 우파들이 공개적으로 싸가지 없다고 가장 욕 많이 한 사람이 진중권 아니던가? 그럼 진중권의 시대가 한번쯤 열리려나? 물론 그는 재벌 3세가 아니라서 좀 곤란하다.

‘삼성 손자’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꺼낸 말이고, 결국 재벌 3세에게 무상급식을 주는 건 사치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요즘은 재벌 3세가 유행이다. 예를 들면, 현빈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느냐, 요런 얘기 아닌가? 잠깐 생각해보면, 우린 지금 쓸데없는 논쟁 중인지도 모른다. 재벌 3세들이 한국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설령 한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급식비가 등록금에 포함되는 비싼 사립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어쩌면 ‘사회 지도층의 의무’를 생각하는 현빈처럼 평준화된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들에게 급식을 무상으로 줘야 하네 마네, 이런 쓸데없는 논쟁 중 아닌지 모르겠다. 재벌 3세들이 정말로 초등학교에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과 같이 다니고 있다면, 그때는 그런 훌륭한 지도층을 위해서 무상급식 정도는 포상으로 줘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진짜 그렇다면 정말 훌륭하신 분들 아닌가!

지난번 날치기로 이제는 국립대도 아닌 그냥 법인이 되어버린 서울대 등 국립대의 등록금은 사립대보다 좀 싸다. 여기에도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는데, “학생은 재벌 3세니까 국가 보조분만큼은 더 내셔야겠네요?”, 이럴 건 아니지 않은가? 삼성의 이재용은 자랑스럽게도 이 학교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스위스의 대학이 연간 등록금 50만원 정도인 걸로 아는데, 네슬레 회장 손자가 대학에 간다고 해서 더 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 재벌 손자에게 무료점심을 주는 문제에 대한 경제적 원칙이 있을까? 존 스튜어트 밀이 19세기 런던에서 소녀 노동자에게 성인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을 주는 것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경제에는 생산의 원칙과 분배의 원칙이라는 게 있는데, 성인 노동자와 노동 성과가 거의 비슷한 소녀들에게 절반의 임금만 주는 것은 바로 분배의 원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말로 풀어보면, “소녀들을 착취하는 나쁜 놈들”이라는 얘기를 밀이 한 거다. 경제에는 기술적 원칙도 있지만 사회적 원칙도 있다는 게 밀의 주장이다. 재벌 3세의 무상급식 문제가 그렇다. 그들에게 급식을 줄 거냐, 말 거냐에는 사실 우리가 합의해야 하는 진짜 논의가 숨겨져 있다. 효율성 문제가 아니다. 효율성으로만 따지면 재벌 3세가 일반인들보다는 몇 백배 혹은 몇 천배 세금을 더 많이 내니까, 그들이 부자라도 상관없다. 진짜 문제는 재산 탈루로 전혀 세금을 내지 않는 부자의 경우이다. 이들은 어차피 서류상으로는 가난한 집안이니까, 어떻게 해도 공짜점심을 먹게 된다.

무상급식 논의의 진짜 얘기는 세원 마련, 즉 증세와 관련되어 있다. 애꿎은 재벌 3세를 끌어와서 절대로 증세는 안 된다는 부자들과 혹시라도 자신의 세금이 늘까 봐 걱정하는 중산층, 이런 논의들이 숨어 있는 거 아닌가? 보편적 복지와 부유세, 이런 논의가 결국 우리가 부딪히게 될 궁극의 논의이다. 재벌들이 세금 더 내기 싫다고 자기 손자 무상급식 안 줘도 된다고 하면, 너무 쫀쫀한 거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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