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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8 19:58 수정 : 2011.04.18 19:58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식 A×0=5에서 미지수 A의 값을 구하시오.”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문제가 주어졌다. 자,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머리를 싸매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중 18시간 이상을 투자해보지만, 여전히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어딘가 잘못된 것 같지만, 답이 있다며 문제 풀기를 강요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있으니, 잘못된 것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인 것 같다. 고등학교 3년의 시간 동안 문제를 옮겨 적기를 수천 수만 번, 결국 왜 자신이 그렇게 반복적으로 그 식을 쓰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졸업을 한다. 과연 우리 중고등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고 무엇을 잊어버리고 있는가.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한 청소년 토론 프로그램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를 진행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참여하는 구성원이 바뀌어도, 토론 주제가 달라도, 다른 지역에서 열려도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참여한 아이들이 토론을 시작하기 전 자기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느 학교에서 온 몇 학년” 학생이다. 간혹 자신의 이름 말하는 것을 깜빡해도, 그 소개말은 잊은 적이 없다.

이처럼 아이들은 열여섯살, 열여덟살 세월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는 모두 잊은 채, 어떤 학교에 다니는 몇 학년 ‘학생’이어야만 한다. 학생이기 때문에 교과 이외의 것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치 평가 자체를 거부당한다. 한 번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경험이 없는, 새로운 모험과 도전 없이 교실에 앉아 주어진 시험지와 사투밖에 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이 한 생명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결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이 탄생할 수 없다.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교육할 수 있는 통로를 찾지 않는 이상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정의로운 세상인지, 소통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와 같이, 학교에서 배우는 정태적인 공부 속에서는 마주할 수 없었던 질문들에 처음에는 힘겨워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30분만 흘러도 아이들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편견 없이 들여다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향한 시선과 귀 기울임을 통해 청소년들은 온전히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느끼고 보는 경험을 한다. 세상의 틀에 의해 구분된 것들-학교·학년·지역·성적-이 아직 낯선 아이들은 가장 순수하기에 정확한 눈으로 서로를 향해 질문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A×0=5. 이 식은 애초부터 잘못되었다. 잘못된 식을 만든 사람들, 잘못된 식인지 알건 모르건 무조건 아이들에게 풀어내기를 요구한 어른들, 그리고 이를 무조건 풀어야만 하는 강박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아이들, 이 모두에게 식을 풀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이 식의 가능성은 곱셈을 덧셈으로, 또는 5를 0으로 바꾸는 시도가 있을 때만 발현된다. 청소년들에게는 잘못된 식을 풀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은 없다. 다만, 불가능했던 식을 가능하게 할 통로를 찾고, 가능한 형태로 바꿀 책임과 자유가 있을 뿐이다.

불가능한 것에서 기적처럼 가능성이 발현되는 것. 그 지점을 청소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정세청세에서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더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 가장 본질의 것을 볼 수 있는 순수한 눈을 아이들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혁명의 새로운 방법이 아닐까? 여기에서 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뜨려왔던 청년 정신의 역사를 이을 희망을 발견한다.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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